헤르만 헤세, 『로스할데』
『로스할데』는 1914년 헤르만 헤세가 34살에 쓴 소설이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지만 그렇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의 대표작으로 일컫는 『데미안』보다 더 성숙한 느낌을 받는다. 『데미안』이 소년에서 청년으로의 성장이라면, 『로스할데』는 이미 성공한 예술가의 정신적 성숙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까?
'로스할데'는 저택의 이름이다. 주인공인 요한 페르구트는 유명 화가다. 아내가 있고, 두 아들이 있다. 그러나 아내와는 사랑으로 맺어지지 않았고, 조금 남아 있던 애정마자 사라진 상태다. 큰 아들 알베르트도 불화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의 기숙사에서 지낸다. 로스할데 저택의 본채는 아내에게 내주고, 자신은 정자를 개조해 아틀리에를 만들어 거기서 지낸다. 화가와 아내 사이를 잇는 유일한 끈은 일곱 살 난 둘째 아들 피에르뿐이다. 피에르는 엄마와 아빠 사이의 불화를 인지하지 못한다. 화가는 아내와 헤어지려 했지만 피에르만은 아내에게 양보할 수 없어 이혼하지 못한 상태다.
로스할데에 요한 페르구트의 오랜 친구 오토 부르크하르트가 찾아온다. 인도에서 큰 사업을 펼치고, 세계 여행을 다니는 친구다. 그는 친구가 아내와 커다란 균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화가 친구에게 인도로 가자고 권유한다. 예술을 구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떠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부르크하르트는 화가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자아인 셈이다.
화가가 결국은 인도로 떠나기로 하고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받기 시작하는 가운데 형 알베르트와 마차를 타고 소풍을 다녀왔던 피에르가 앓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뇌막염으로 진단되면서 악화되고, 결국은 사망한다. 피에르가 이 감염질환으로 고통받는 마음의 상태, 증상은 너무나도 자세해서 헤르만 헤세가 직접 겪거나, 아니면 곁에서 지켜본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피에르는 눈처럼 새하얀 얼굴로 입을 흉하게 일그려뜨리며 누워 있었다. 뼈만 앙상한 육체는 미칠 듯한 경련 때문에 비틀려 있었다. 눈은 공포로 이성을 잃고 희번덕거렸다. 갑자기 소년은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다. 더욱 난폭하고 울부짖는 비명이었다. 그러고 나서 활처럼 몸을 구부리며 우뚝 섰다. 침대가 흔들릴 정도였다. 소년은 맥없이 쓰러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솟구쳐 일어났다. 소년의 몸은 고통 때문에 긴장되어 굽어지고 합쳐졌다. 마치 화가 난 어린이의 손에 쥐어진 채찍처럼 말이다.”
읽으며 괴로웠다. 소설가는 예술과 불행한 결혼 생활을 두고 고민하였고, 결국은 예술을 택했다. 누구든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예술적 경지에 이른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가족을 떠날 수 있을까? 비록 애정이 식었다고는 하나. 주인공에게 자식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예술을 택하도록 한 데서 헤르만 헤세의 비범함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