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일, 『내 몸 안의 거울, DNA 이야기』
DNA라는 물질을 처음 발견한 것은 1869년 스위스의 프리드리히 미셔였다. 붕대에 묻어 있는 고름을 분석하다 세포의 핵 속에 들어있는 산성 물질을 찾아내 뉴클레인이라 불렀고, 이후 이 물질은 핵산(nucleic acid)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거창한 용어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핵 속의 산성 물질‘이라는 뜻이다.
DNA는 너무 단순한 구조라 생각해 유전 현상을 담당할 것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겨우 4가지 종류밖에 가지지 않는 구성 성분으로 복잡하고 위대한 생명 현상을 진두지휘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다 에이버리 등에 의해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게 입증되고, 왓슨과 크릭은 구조를 밝혀냈다. 1940년대, 1950년대의 일이다.
이후로 DNA의 눈부신 시대가 펼쳐졌다. DNA의 구조는 생각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또는 어떻게 작용하지 않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등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는 것이 적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있는 것이 DNA이고 유전자다.
DNA가 생명 현상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평가절하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또 그러다 DNA를 조절함으로써 많은 질병을 치료하고, 미래의 식량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방법들을 개발하면서 다시 DNA에 더 많이 집중하는 시대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발견에서부터 우여곡절을 겪으며 구조와 역할에 대해, 그리고 가치에 대해 알아내어 간 역사를 오랫동안 DNA를 연구해온 저자가 『내 몸 안의 거울, DNA 이야기』에 담았다.
DNA에 관한 많은 얘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 담고 있지 않은 DNA, 유전자 얘기가 뭐 있을까 떠올려보지만 금방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유전자가 결정하는 형질들, 유전자 감식 기술의 과거와 현재, 유전자 변이가 가져온 놀라운 비밀들(이를테면 인간으로의 진화, 인간의 언어 능력, 개의 다양성 등) 등 유전자 자체의 대한 얘기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유전학의 발달에 관한 역사는 눈부시기 그지없다. 특히 21세기 들어 인간의 전체 유전체 염기서열이 해독되면서 더 많은 과제와 가능성을 과학자들에게 남겼고, 후성유전학은 유전 현상의 신비를 더해가고 있으면서 그 응용 가능성에 흥분하고 있다. 거기에 유전자 가위라 불리는 크리스퍼 등의 발견과 응용은 생명공학의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저자는 유전자, DNA 그 자체에만 이 책을 머물게 하고 있지는 않다. 생명 현상이 유전자의 조절을 받는다는 점에서 어떤 것이든 DNA와 연관지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입장임에 분명하다. 줄기세포와 생명 복제에 대한 얘기가 하나의 chapter로 크게 들어서 있는 걸 보면 그렇다. 물론 당연히 그것도 유전자를 조절함으로써 가능해진 영역임에 틀림없다.
유전자와 관련한 미래 이야기로 줄기세포, 생명 복제에 이어 대표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은 난치병 치료와 미래 식량 자원에 관한 이야기다. 난치병과 관련해서는 우선 발전한 것이 진단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암 관련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선제적으로 유방을 절제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암 말고도 ADHH 등에 대한 유전자 진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치매와 당뇨, 희귀 질환 등에 대한 맞춤 치료가 유전자 연구를 통해 희망을 더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식물 유전자 전문가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은 식물을 중심으로 한 먹을 거리에 관한 얘기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른바 유전자 변형에 관한 것이다. 저자의 입장은 지금까지 인류를 살려온 것은 자연적으로든, 혹은 인위적으로든 유전자를 변형시켜온 작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유전자 변형 작물은 그 변형의 속도가 급속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방법이 아니라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지구의 인구를 먹여살리기 힘들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당연히 안전성이 입증되어야 하는 일이지만, 우리가 기댈 데가 거기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긴 유전자 여행이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어렵지 않으면서도 유전자에 대해, 그리고 유전자 연구에 관해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고자 저자가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