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상, 『세상에서 가장 쉬운 과학 수업: DNA 구조』
정완상 교수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오리지닐 논문으로 배우는 과학‘ 시리즈의 마지막은 ’DNA 구조‘를 제목으로 달고 있다. 멘델의 완두콩 논문, 모건의 초파리에서의 성연관 유전에 관한 논문, 그리고 왓슨과 크릭의 DNA 구조 논문이 책 뒤에 붙어 있으니, 이게 시리즈의 의도에 걸맞는 논문들이다.
그런데 사실은 DNA 구조에 관한 부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뢴트겐의 X선 발견에서, 브레너 부자의 X선 회절을 이용한 고분자 구조 결정, 그리고 윌킨스, 프랭클린, 왓슨, 크릭의 DNA 구조 연구까지 ’네 번재 만남‘ 부분 40쪽 정도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고대에서 근대, 현대에 이르는 의학의 발달 과정, 린네에서 비롯한 분류학과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멘델의 유전 현상 발견, 모건 등의 유전학 연구, 그리고 란트슈타이너의 혈액형 발견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실은 DNA 구조에 관한 강의라기보다는 생물학에 관한 강의인 셈이다.
그런데... 물리학 전공자가 써서 그런가, 아쉬운 점이 너무 많은 책이다.
우선은 핵심적인 내용보다는 주변의 이야기가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린네가 이 학교, 저 학교를 옮겨다니고, 이곳 저곳을 탐사하고, 이 책, 저 책을 쓰고 한 내용들을 잔뜩 소개하고 있는데, 정작 이명법에 관해서는 한두 줄이다. 또, 하비의 혈액 순환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면서는 그가 어떤 식으로 그것을 밝혔는지가, 혈액 순환이라는 사실 만큼이나 미래의 과학자들에게는 더욱 중요할 텐데, 그런 내용은 하나도 없다. 대부분이 그렇다(딱 한 부분, 브레너 부자의 X선 결정학 부분은 원리를 설명한다. 물리학이라서?)
맥락을 봐서 꼭 소개해야 하는, 중요한 인물과 내용인데도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고대 의학에서 근대 의학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가 나오면 이를 극복해낸 베살리우스가 등장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유전학을 이야기하면서 끝부분에 란트슈타이너의 혈액형 발견으로 마무리짓는 것도 어색하기 그지없다(물론 그게 유전 현상으로 설명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리고 더 실망스러운 점은 오류가 참 많다는 것이다.
몇 가지 언급하면 이렇다.
- 미생물을 처음 발견하고 기록한 레이우엔훅이 세포핵 발견했다고 하는데, 그걸 적혈구에서 발견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적혈구에는 핵이 없다.
- 종두법과 관련한 부분에서, 터키에서 인두법을 배워 영국으로 가져와 보급한 인물을 몬터규 대사라고 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의 부인인 메리 몬터규 여사다.
- 67쪽의 백신(Vaccin)은 Vaccine이다.
- 70쪽에서 파스퇴르가 발효 현상이 생명 현상이라는 것을 발견한 이야기를 하면서 ’젖산 이스트‘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젖산 ’이스트‘ 즉, 효모가 아니라 세균이다. ’젖산균‘.
- 탄저균의 발견을 마치 파스퇴르의 업적처럼 기술하고, 코흐가 마치 부당하게도 자신이 한 것처럼 주장했다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탄저균 발견은 분명하게 코흐의 업적이다.
- 93쪽에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논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1922년 논문이다. 페니실린은 1928년에 현상을 발견했고, 1929년에 발표했다. 1922년의 논문은 역시 플레밍이 발견한 리조자임에 관한 논문이다. 그리고 플레밍이 플로리와 체인의 페니실린 분리 연구를 축하했다고? 전혀 아니올시다.
- 134쪽에 다윈이 생물학과를 졸업했다고 했는데, 그때 생물학과가 있었다고?
- <종의 기원> 출판과 관련한 이야기도 많은 부분을 누락하고 있다.
- 멘델에 관해서도, 유전법칙을 ’만든‘ 과학자로 소개하고 있다.
- 왓슨이 폴링을 통해서 프랭클린의 그 유명한 51번 사진을 봤다고 하는데, 폴링은 당시 미국 정부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찍혀 해외여행이 금지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DNA 구조 경쟁에서 뒤쳐졌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인데.... 왓슨에게 X선 회절 사진을 보여준 것은 윌킨스였다.
좋은 의도의 책인데, 아쉬운 점이 많다. 물리학자가 생물학에 너무 욕심을 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