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목적이 없고, 수동적이며, 비도덕적

앤디 돕슨,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

by ENA


앤디 돕슨은 <들어가며>에서 앞으로 자신이 할 이야기가 “진화의 함정, 커다란 장벽, 사각지대, 절충안, 타협, 실패작에 관한” 것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가 ‘위대한 성공작’이라고 여기는 “진화의 흠”(이게 이 책의 본래 제목이기도 하다)에 관한 이야기를 얘기다. 그것은 우리가 진화에 대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그 오해를 바로 잡았을 때 다시 보이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해는 어떤 모습일지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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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제목으로 삼은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에서 시작해 본다. 물론 이 내용은 이 책의 시작이 아니라 거의 결론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앤디 돕슨은 1988년 알래스카의 얼음 아래 갇힌 귀신고래 세 마리를 구출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소개한다.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얼음 아래 갇혀 있던 고래 중 하나는 결국 ‘익사’하지만 다른 고래는 구출된다. 여기서 앤디 돕슨은 이 감동적인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진화는 그사이에 고래에게 아가미를 제공하지 않은 걸까?”


고래의 조상이 뭍에서 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 시작한 이후로 진화는 고래에게 많은 것은 안겨주었다. 물에서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러 변화가 그것이다. 잘 몰랐는데, 앤디 돕슨은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헤엄치기 좋은 유선형의 몸, 필요가 없어져 흔적화된 뒷다리, 추위로부터 보호해주는 두꺼운 지방층, 추진력을 위한 강력한 꼬리지느러미, 수백 킬로미터를 가로질러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깊게 공명하는 울음소리 등등. 그러나 고래는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다. (물론 아가미가 물에 사는 동물들에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앤디 돕슨은 이를 ‘경로 의존성’의 개념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모든 육상동물의 조상은 이미 아가미를 포기하고 폐를 호흡의 도구로 선택해왔다. 그런데 다시 물로 들어간 동물이 이미 포기했던 아가미를 가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단계가 커다란 이익을 준다고 해서 중간 단계의 불이익을 감수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진화다. 어떤 제약 조건이 존재한다면 그 제약 조건 아래에서 형질이 변화하고 유지하는 것이 진화라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화는 경로 의존성을 가졌다고 하며, 바로 그런 이유로 진화는 결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앤디 돕슨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진화의 흠에 관한 대표적인 예는 아니다. 가젤을 쫓는 치타, 뻐꾸기의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휘파람새, 고양이에 기생하는 톡소플라스마, 세균과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체들, 치명적인 약점이면서도 짝을 유혹하기 위해 치장을 하는 새들과 파리들, 그리고 노화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생명체들. 이 모두가 진화의 예이며, 그것도 불완전한 진화를 보여준다. 진화는 “목적이 없고, 수동적이며, 비도덕적”이다. 우리는 그런 진화의 숙명 속에 있는 존재다.


이 책은 진화에 관해 ‘특별히’ 새로운 시각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매우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이론적으로, 또 일반의 용어로도 설명하고 있다. 주로 동물에 치우쳐 있긴 하지만, 예로 등장하는 다양한 예들은 그것 자체로 자연과 생명의 존재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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