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거리를 헤매는 여행자의 심정

앤드루 랭 & 오스틴 돕슨, 『책 사냥꾼의 도서관』

by ENA


앤드루 랭은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에 대해, 책을 수집한 후 보관하는 장소, 즉 도서관에 대해, 그리고 수집가의 안목에 대해 쓰고, 오스틴 돕슨은 책에 들어간 삽화에 대해 쓰고 있다. 일단 19세기 말에 나온 책이란 걸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그러니까 무척 낯선 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는 여행자의 처지인 셈이다. 다행히 저자들은 낯익은 경우가 좀 있으나, 작품(즉, 책)의 제목은 8할 이상이 낯설다. 낯익다는 것도 제목을 들어봤다 정도이지 읽어본 책은 거의 없다. 책을 읽는 데 커다란 장애가 아닐 수 없다.


이럴 때는 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머릿속에 두고 가려다가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무엇을 인상 깊게 읽고, 남겨둬야 할지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다 얻지 못한다면 많은 것을 포기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어야 한다.


그렇게 정신을 겨우 차린 가운데 몇 가지 인상에 남은 부분을 기록해 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책 수집, 이 책에서는 책 사냥이라고 일컫기도 하는 행위에 관한 것.

“나는 종종 책 수집의 즐거움과 스포츠의 즐거움이 서로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책 수집은 ”책 사냥“이라 불리기도 하며 옛 라틴어 구절에는 ”이 숲에서의 추적은 절대 싫증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책 수집은 낚시에 비유되는 쪽이 한층 더 적절하다. 책 수집가는 낚시꾼이 트위드강 가나 스페이강 변을 거닐 듯 런던과 파리의 거리를 소요한다.” (28쪽)

- ‘소요’라는 말에 꽂힌다.


다음으로는, 책 도둑에 관한 이야기들.

저자는 “책 도둑이라는 악한의 도덕적 지위가 너무나도 미묘하고 까다롭다”고 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싶은데,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책을 능멸하는 난폭한 블레셋인과 도가 지나치게 책을 사랑하는 책 도둑 중 누가 더 나쁜 시민인가?”


저자가 이에 대해 명시적으로 답을 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책을 도둑질하더라도 그 책은 어딘가에는 잘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마음은, 저자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유명한 책 도둑에 관한 이야기다. 바로 교황 인노겐티우스 10세다. 물론 교황에 오르기 전 얘기다. 교황의 사절로 파리를 찾은 추기경의 수행원 시절이었다. 그는 한 화가의 화실에서 정말 중요한 책이 아무렇게도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이런 남자가 이토록 가치 있는 책의 주인이라니.’라는 심정으로 그 책을 자신의 수도복에 숨겼다고 한다.


책 도둑을 넘어 ‘책 아귀(Book-Ghoul)’가 있다. 책 도둑과는 달리 책 아귀에 대해서는 아주 비판적이다. 기준은 책에 대한 태도다. 태도는 책에 대한 존중의 유무에서 달라진다.

“책 도둑보다 한층 더 증오스러운 도둑놈 심보를 지닌 사람들이 있다. 바로 ‘책 아귀’다. 책 아귀는 책 도둑의 도둑질에 더해, 훔친 책을 조각조각 잘라내어 훼손하는 가증스러운 악덕을 지니고 있다. 책 아귀는 책의 속표지, 권두 삽화, 삽화, 장서표를 수집한다.” (97쪽)


그런 책 아귀가 감쪽같이 특정 책장만을 잘라내 가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바로 이런 방법이다. (이 글을 읽고 누가 흉내내면 안되는데...)

“책 아귀는 공공 도서관과 개인 도서관을 살금살금 배회하면서 책갈피에 젖은 실을 끼워 넣는다. 젖은 실은 서서히 책 아귀가 탐내던, 삽화가 들어 있는 책장을 잘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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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봐도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책 수집에는 그다지 악착같지는 않다. 읽는 책의 약 20% 정도만 구입하는 편이니 말이다. 특별한 책을 꼭 구입해서 내 책장에 들여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내게 들어온 책에 대해서는 매우 신경을 쓴다. 빌려주는 법도 별로 없고, 책장이 넘친다고 내다 버리는 경우도 별로 없다(꼭 한번 그런 적이 있긴 하다. 가족의 성화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책 수집가, 즉 책 사냥꾼은 아니다. 그냥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구분이 더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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