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Aug 04. 2020

배양하라(Culture)!

캐서린 하먼 커리지의 《식탁 위의 미생물》

일요일가족과 함께 삼계탕을 먹었다먹고 계산하기 위해서 들고 있던 책을 잠깐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주인 아저씨가 재미있는 제목이네요?”라고 말은 건네신다나는 별 대답 없이 .”하고 말았지만돌아서서 나오면서는 이 제목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궁금해진다. “식탁 위의 미생물”.

 

식탁은 가게의 식탁이 될 수도 있고, ‘음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리고 미생물은 아마도 병원균을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그러니까 가정이나 음식점에 존재하는 병원균에 대한 책으로 생각했을 개연성이 무척 크다그게 일반적이다식품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좋은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보편적인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캐서린 하먼 커리지의 식탁 위의 미생물은 내가 그 주인 아저씨의 생각으로 어림짐작했던 그런 내용의 책이 아니다오히려 그 반대다식품에 존재하는 미생물이야말로 우리 몸을 구성하고우리의 건강을 돕는 미생물이라는 내용이다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 관한 책이고, ‘발효(fermentation)’에 관한 책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이제 많이 알려졌다책으로도 그렇지만(수 년간 이에 관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왔다), 최근에는 서울대 천종식 교수님의 TV강의도 있었다그래서 미생물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래도 식품에 어떤 미생물이 있다고 하면 우선은 꺼려진다그만큼 작은 생명이 인체에 해롭다는 생각은 상당히 굳건한 인식이다사실 파스퇴르와 코흐의 세균 병인론과 플레밍의 항생제 발견이 인류의 건강에 미친 영향은 정말 지대하다더러운 공기가 아니라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며그 세균을 알약이나 주사로 퇴치할 수 있다는 사실로 구한 생명이 얼마인가겨우 한 세기 남짓한 기간 동안 우리의 인식에 세균혹은 미생물은 나쁜 놈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나쁜 놈은 종류가 많지 않다우리 몸 속에 미생물로 가득하고우리가 존재하는 어느 곳에나 미생물로 덮여 있다그 미생물들이 모조로 나쁜 놈들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그렇지 않다대부분은 우리 건강에 나쁘지 않으며심지어 우리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친다특히 약 10년 전 세균의 조성에 따라 비만과 마름이 결정된다는 논문이 <Science>지에 발표된 이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대세가 되었다지금은 단순히 비만에 영향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그 연구 결과에 대해서 반대되는 결과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염증성 질환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우울증이나 자폐와 같은 정신 건강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우리 몸 속의 미생물이 바로 우리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캐서린 하먼 커리지의 식탁 위의 미생물은 그런 마이크로바이옴의 중요성에서 나아가특히 발효 식품의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말하자면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얘기는 이 책의 배경이고주는 그 마이크로바이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식품에 관한 얘기다). 발효 식품에 들어 있는 미생물들이 어떤 것이며어떻게 만들어지며그것들에 대한 효과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단순히 문헌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직접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입수하고맛을 보고그 효과를 확인하고 있다그리스로스위스로이탈리아로일본으로... 그리고 당연히 한국의 서울도 방문한다.

 

그녀가 다루는 발효 식품은 의외로 다양하다요거트치즈케피르쿠미스와 같은 유제품피클사우어크라우트그리스의 올리브일본의 쓰케모노우메보시한국의 김치와 같은 채소와 과일의 절임 음식(김치에 대해서 유서 깊은 절임 음식의 세계에서 나머지 전부를 군림하는 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김치이다라고 쓴다하지만 그녀는 일본 음식과는 달리 김치를 그다지 즐기지는 못한 것 같다), 치차맥주사케코지 등과 같은 곡물 발효 음식낫토템페미소와 같은 콩류와 씨앗으로부터 나온 음식그리고 소시지베트남의 넴추아느억맘한국의 홍어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과 같은 육류 발효 음식 등다 언급하지도 못하고또 다 기억하지도 못하고심지어 읽기도 쉽지 않은 종류들이 등장한다또한 그 음식들에서 나오는 미생물들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락토바실러스 등은 상당히 반복해서 등장하지만각 발효 음식마다 새로운 학명을 가진 미생물이 나온다사실 다 밝혀지지도 않았다사실 그런 다양성이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의 요체이기도 하고그 다양성 때문에 발효 음식들이 효과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음식들을 통해 미생물들을 섭취하고(프로바이오틱스), 좋은 미생물들에 영양분을 제공해야 한다(프리바이오틱스). 현대에 들면서 황폐화된 우리 몸 속 미생물상을 회복하기 위해 고대의 음식물로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그래도 우리 몸 속의 미생물이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다양하고 좋은 미생물로 가꾸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배양하라(Culture)!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214075?art_bl=12821167



작가의 이전글 초파리에게 우리가 빚진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