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하먼 커리지의 《식탁 위의 미생물》
일요일, 가족과 함께 삼계탕을 먹었다. 먹고 계산하기 위해서 들고 있던 책을 잠깐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주인 아저씨가 “재미있는 제목이네요?”라고 말은 건네신다. 나는 별 대답 없이 “아, 예.”하고 말았지만, 돌아서서 나오면서는 이 제목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궁금해진다. “식탁 위의 미생물”.
‘식탁’은 가게의 식탁이 될 수도 있고, ‘음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생물’은 아마도 ‘병원균’을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가정이나 음식점에 존재하는 병원균에 대한 책으로 생각했을 개연성이 무척 크다. 그게 일반적이다. 식품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좋은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보편적인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캐서린 하먼 커리지의 《식탁 위의 미생물》은 내가 그 주인 아저씨의 생각으로 어림짐작했던 그런 내용의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식품에 존재하는 미생물이야말로 우리 몸을 구성하고, 우리의 건강을 돕는 미생물이라는 내용이다.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 관한 책이고, ‘발효(fermentation)’에 관한 책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이제 많이 알려졌다. 책으로도 그렇지만(수 년간 이에 관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왔다), 최근에는 서울대 천종식 교수님의 TV강의도 있었다. 그래서 미생물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식품에 어떤 미생물이 있다고 하면 우선은 꺼려진다. 그만큼 작은 생명이 인체에 해롭다는 생각은 상당히 굳건한 인식이다. 사실 파스퇴르와 코흐의 ‘세균 병인론’과 플레밍의 항생제 발견이 인류의 건강에 미친 영향은 정말 지대하다. 더러운 공기가 아니라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며, 그 세균을 알약이나 주사로 퇴치할 수 있다는 사실로 구한 생명이 얼마인가? 겨우 한 세기 남짓한 기간 동안 우리의 인식에 세균, 혹은 미생물은 ‘나쁜 놈’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나쁜 놈은 종류가 많지 않다. 우리 몸 속에 미생물로 가득하고, 우리가 존재하는 어느 곳에나 미생물로 덮여 있다. 그 미생물들이 모조로 나쁜 놈들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우리 건강에 나쁘지 않으며, 심지어 우리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약 10년 전 세균의 조성에 따라 비만과 마름이 결정된다는 논문이 <Science>지에 발표된 이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대세가 되었다. 지금은 단순히 비만에 영향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그 연구 결과에 대해서 반대되는 결과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염증성 질환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우울증이나 자폐와 같은 정신 건강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우리 몸 속의 미생물이 바로 ‘우리’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캐서린 하먼 커리지의 《식탁 위의 미생물》은 그런 마이크로바이옴의 중요성에서 나아가, 특히 발효 식품의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말하자면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얘기는 이 책의 배경이고, 주는 그 마이크로바이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식품에 관한 얘기다). 발효 식품에 들어 있는 미생물들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것들에 대한 효과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단순히 문헌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직접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입수하고, 맛을 보고, 그 효과를 확인하고 있다. 그리스로, 스위스로, 이탈리아로, 일본으로... 그리고 당연히 한국의 서울도 방문한다.
그녀가 다루는 발효 식품은 의외로 다양하다. 요거트, 치즈, 케피르, 쿠미스와 같은 유제품, 피클, 사우어크라우트, 그리스의 올리브, 일본의 쓰케모노, 우메보시, 한국의 김치와 같은 채소와 과일의 절임 음식(김치에 대해서 “유서 깊은 절임 음식의 세계에서 나머지 전부를 군림하는 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김치이다”라고 쓴다. 하지만 그녀는 일본 음식과는 달리 김치를 그다지 즐기지는 못한 것 같다), 치차, 맥주, 사케, 코지 등과 같은 곡물 발효 음식, 낫토, 템페, 미소와 같은 콩류와 씨앗으로부터 나온 음식, 그리고 소시지, 베트남의 넴추아, 느억맘, 한국의 홍어,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과 같은 육류 발효 음식 등. 다 언급하지도 못하고, 또 다 기억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읽기도 쉽지 않은 종류들이 등장한다. 또한 그 음식들에서 나오는 미생물들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락토바실러스 등은 상당히 반복해서 등장하지만, 각 발효 음식마다 새로운 학명을 가진 미생물이 나온다. 사실 다 밝혀지지도 않았다. 사실 그런 다양성이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의 요체이기도 하고, 그 다양성 때문에 발효 음식들이 효과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음식들을 통해 미생물들을 섭취하고(프로바이오틱스), 좋은 미생물들에 영양분을 제공해야 한다(프리바이오틱스). 현대에 들면서 황폐화된 우리 몸 속 미생물상을 회복하기 위해 고대의 음식물로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몸 속의 미생물이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다양하고 좋은 미생물로 가꾸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 배양하라(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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