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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03. 2020

초파리에게 우리가 빚진 것들

스테퍼니 엘리자베스 모어의 『초파리를 알면 유전자가 보인다』

오페론을 발견하여 노벨상을 받은 자크 모노는 대장균에서 진실인 것은 코끼리에서도 진실이다라고 했다모델 생물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모델 생물이란 생물의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실험에 기본적으로 이용되는 생물을 말한다이를테면 대장균(Escherichia coli), 생쥐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 제브라 피쉬애기장대그리고 초파리 같은 것들이 있다연구자들은 이 생물들을 연구하고그 연구를 확장시킨다.


초파리를 본격적으로 연구에 이용한 것은 20세기 초 TH 모건에 의해서였다그는 초파리에서 돌연변이를 발견했다바로 흰색 눈을 가진 초파리였다(원래 초파리의 눈 색깔은 붉은색이다). 곤충학자가 아니었던 그는 발생과 유전에 관심을 가졌고우연한 기회에 초파리에서 기회를 발견했다그리고 그는 돌연변이 초파리들을 이용해서 유전학의 기초를 만들었다(당연히 노벨상도 받았다). 그 이후로 초파리는 모델 동물로서 화려한 역사를 써오고 있다.


하버드대 의대에서 유전학을 가르친다는 스테퍼니 엘리자베스 모어(이처럼 저자 약력이 짧은 책도 드물다)가 쓴 『초파리를 알면 유전자가 보인다』는 바로 그 초파리의 모델 동물로서 써온 화려한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세대가 짧고개체수를 많이 확보할 수 있으며형질을 뚜렷하여 돌연변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크기가 작아 실험 공간도 별로 차지 않고키우는 것도 간단하기 때문에 모델 동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특히 초파리에게 있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 사람에게도 있기 때문에 생명 연구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인간에의 적용의 측면에서도 훌륭하다그리고 100년 여 동안 축적된 초파리에 대한 연구 자료는 이 동물을 버릴 수 없게 한다이 책은 바로 초파리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을 바탕으로 그것들이 결국에는 사람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사람들은 초파리와 사람 사이의 간격이 매우 넓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초파리에서 어떤 것들을 밝혀냈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여길 지 모른다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초파리에서 밝혀진 것들은 거의 대부분 사람에게도 적용되며사람에서 잘 밝힐 수 없는 것을 초파리로 우회해서 밝힌 후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심지어 사람의 신경학적 병리라고 할 수 있는 파킨슨병이라든가알츠하이머 같은 병에 대해서도 초파리를 통해서 연구를 한다고 한다그리고 인체의 방어 작용(면역 작용)을 이해하는 데도 초파리가 이용된다(개인적으로 말하자면최근에는 동물 실험을 할 때 생쥐 대신에 초파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나도 그렇다). 그래서 초파리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다물론 그 사이의 간격을 넘는 단계가 필요하고그 단계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지만 말이다그럼에도 바로 인간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쉬우며효율적이며또 윤리적인 문제도 거의 없기 때문에 초파리는 소중한 연구 재료인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초파리에 대한 연구특히 그것이 사람과 관련된 연구를 정리하고 있다그런데아쉬운 점은 너무 정리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이런 것저런 것들이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많다분량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좀더 깊이 들어가면서 알고 싶은 부분들이 그냥 겉핥기 식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그러다 보니 책이 쉬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려워졌다또한 결국은 초파리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모든 단원이 끝난다(그런 얘기는 한두 번만 하고마지막에 정리를 하더라도 충분할 텐데좋은 얘기도 너무 많이 들으면 귀찮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이 책은 어쩌면 기본 텍스트로는 괜찮다초파리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이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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