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끈이론》
제목만 보고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물리학 책까지? 그것도 그렇게 어렵다는 끈이론에 대한 책을? 이렇게 생각했다. 잠시.
그럴 리가 없다. 그가 아무리 고등수학에 조예가 깊다고 본격적인 물리학 책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 들여다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이 책은 물리학 쪽이 아니라 테니스에 대한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그런데, 테니스라니... 다시 궁금해진다. 떠올려 봤더니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에 로저 페더러에 대한 글이 있었다. 무척 아름답고 신기한 글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한 권을 이룰 만큼 테니스에 대한 글을 썼다는 게 그렇게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다. 의문은 금새 풀린다. 그는 꽤 유망했던 주니어 테니스 선수였다. 주 단위 대회에서는 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그러다 더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고 여길 즈음 수학에 빠졌다(테니스에서 수학이라니, 그리고 소설가라니... 참 엮기 힘든 조합이긴 하다).
그래도, 혹은 그래서 그는 테니스에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테니스를 ‘강박저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라고 한다(부제이기도 하다). 테니스에 대한 자신의 경험, 트레이시 오스틴이라는 주니어 챔피언이었다 어린 나이에 은퇴한 테니스 선수의 회고록에 대한 평, 마이클 조이스라는 애매모호한 실력의 선수(세계 랭킹 70위 권이니 일반인이니 애호가 정도 수준에서는 하늘 같지만 미디어에선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이다)에 대한 글, US오픈 참관기(피트 샘프러스의 경기를 관전한다), 그리고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에도 실렸던 로저 페더러에 대한 글, 이렇게 테니스에 관한 다섯 편이 한 권의 책을 이루었다. 여전히 자의식 강하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문장이지만, 공들여 읽으면 그만큼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글들이다.
나는 테니스라는 운동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유명한 테니스 선수들은 낯이 익은 이름들이다. 로저 페더러야 지금도 세계 최고이니 그렇고, 이반 렌들, 애거시(월리스는 그를 아주 싫어한다), 마이클 창(그 조그만 아시아계 선수가 서양의 거두들을 거꾸러뜨리는 장면에서의 통쾌함이란... 그런 통쾌함은 이형택 선수가 APT 대회에서 우승할 때, 정현 선수가 호주 오픈에서 4강까지 오르는 장면에서 다시 느낄 수가 있었다), 지미 코너스, 존 매켄로, 피트 샘프러스, 나달 등등이 그들인데, 그 이름들을 맞이하면서, 그다지 인상 깊은 추억은 없지만, 왠지 그들의 플레이가 떠올라 추억 비슷한 것에 젖을 수가 있었다.
이 책은 단지 그가 테니스에 대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 때문에 존재하는 책이 아니다. 그는 테니스에 관해서 쓰면서도 그의 세상과 인간에 대한 태도가 은근히 드러난다. 아니 노골적이다. 그는 자신의 감상을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애거시(아마 브룩 쉴즈와 사귀었던가)에 대한 비호감도 그렇지만, 로저 페더러에 대한 저 과장된 칭찬(정말 그렇다고 밖에 할 수 없다)을 보면 그렇다. US 오픈의 상업성에 대해서 지적하면서, 민주주의라는 표현으로 비꼬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이 책은 읽어 볼 만하다. 특히 (내가 과장된 칭찬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고 했지만) 로저 페터러에 대한 글을 몇 번을 읽어도 괜찮은 글이다. 테니스라는 운동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만큼 쓸 수 있는 글은 앞으로 나오기 힘들다. 테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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