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네 호젠펠더, 『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물리학은 무엇에든 답변할 수 있을까? 현재의 물리학이 아니라 이상화된 물리학이라면 세상의 모든 질문을 답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물리학이란 물질의 근본까지, 물질들의 상호작용의 근본까지 탐구하는 학문이므로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정말 그럴까?
물리학자 자비네 호젤펠더의 『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를 처음 펼치면서 든 생각은 위와 같은 것이었다.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지만, 아직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하난 과학, 물리학이 지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런 걸 생각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그런 내용이긴 하다. 그런데 그렇다고만 하기에는 보다 본질적인 얘기가 많다. ‘지금’이라는 문제, 우주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는지, 혹은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다세계, 혹은 다중우주에 관한 문제,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 우주의 인간원리에 관한 문제, 우주는 생각하는지에 관한 문제, 인간이 예측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 이렇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요약해보면, 이건 철학에 가까운 문제 아닌가? 싶다.
그런데 저자는 절대로 철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물리학적으로 접근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우주의 나이가 6000년이라는 창조론의 주장, 혹은 믿음에 대해 물리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걸 깔고는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현대의 창조론, 즉 우주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설들을 검토한다. 문제는 이 모든 가설이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인 현대판 창조 설화”다. 말하자면 이것들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는, 무(無)과학(ascience)이다. 그렇다고 우주의 나이를 6000년이라는 창조론의 믿음을 과학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믿으려면 믿으라는 식이다. 그러나 그게 과학이라고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자유의지에 관한 것이다. 어찌어찌한 논리를 통해 저자는 현재의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자유의지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현재 수립된 자연법칙은 양자역학에서 비롯된 무작위 요소가 있으면서 결정론적이다. 이 말은 미래가 정해져 있으며, 예외적으로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간헐적 양자 사건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물론 자유의지에 관한 다양한 반론이 있다. 이 반론들을 고스란히 소개하면서도 저자는 물러서지 않는다.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결론은, “그러나 미래는 여전히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간헐적 양자 사건을 제외하고는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도덕과 윤리와 연결시키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자유의지가 없어도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어떤가? 도발적인가? 사실 이보다 더 도발적인 면은 현대 물리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부분이다. 관측과 측정을 넘어서 순수한 수학적인 이론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는 현대 물리학은 무과학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지적한다. 물리학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는 현대 물리학의 서 있는 지점을 이야기하겠다는 설명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지점까지 나아간 물리학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다중우주가설도 마찬가지다.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세계에 대해서 “그런 쓸데없는 가정들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냥 과학이 아닐 뿐이다. 다세계 해석에서 말하는 추가적인 우주들이 실재라는 가정 역시 무과학적인 가정이다.”라고 한다. 이런 작업들이 완벽히 쓸데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좀 더 생산적인 논의를 해보자는 것이다.
생물학 전공자로서 정말정말 새로운 사고 방식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이런 논의가 이뤄진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물리학자는 모두 이런가 싶기도 하다(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물리학이 너무 많은 것을 밝혀내서 앞으로 할 일이 별로 없을 거라고 걱정(?)했던 게 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