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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소중한 건 끝이 있기 때문"

정유정, 『영원한 천국』

by ENA

정유정이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작품은 『종의 기원』이었다(엇비슷한 시기에 지금은 고인이 된 박지리 작가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도 읽었다). 충격적인 결말에 한동안 멍해 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정유정 월드에 입문했다. 『7년의 밤』, 『28』, 『진이, 지니』, 그리고 『완전한 행복』까지.


『영원한 천국』은 『완전한 행복』에 이은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래 인간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란 측면에서 『완전한 행복』보다 『진이, 지니』와 더 가까운 세계가 아닌가 싶지만, 그런 인간 세계에서의 욕망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았다는 점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유정 작가는 영원히 산다는 데 대해 새로운 루트를 제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육신을 떠나 기억과 정신을 복제한 홀로그램의 세계다. 그곳에서 인간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느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마치 다중 세계 같은 느낌이다. 그저 현재에서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삶이 아니라 여기의 삶을 등지고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셈이다.


가짜 삶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아가 대체되어 있기 때문에 극장 속의 ‘나’를 또 다른 ‘나’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롤라’에서의 나를 내가 아니라 할 근거가 없다. 그곳에서도 나는 나로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곳에서의 삶은 죽고 난 후 리셋되어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없다. 그렇게 영원히 돌고 도는 세계가 펼쳐진다. 가장 극도의 과학적 발전이 이뤄낸 세계인데, 마치 불교의 세계가 의식되어 현실화되는 것이다. 죽지만 죽지 않는 세계다.


인간이 욕망은 과학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작가는 “과학은 후진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싶지만, 이것도 과학을 바라보는 하나의 인식이다. 후진을 하지 못하는 과학이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면 이런 세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을 하지 못한다. 작가가 만들어낸, 혹은 과학이 만들어낸 ‘영원한 천국’, ‘롤라’를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이러한 세계에 대한 책임은 인간의 욕망이 져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과학이 져야 하는 것일까? 나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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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따뜻한 계절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삼애원은 유빙이 와서 부딪힐 정도이고, 다른 장면들도 거의 몹시 추운 겨울이 배경이다. 이집트의 사막은 따뜻할 것 같지만 그런 묘사는 없고, 황량함을 준다. 물론 그곳에서 해상은 제이를 만나고, 사막여우를 만나지만, 배경은 여지없다. 경주가 후배였던 지은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지만,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사고로 잃게 되는 배경도, 나중에 만경빌리지에 입소한 후 윤희라는 여성과 만나고, 칼잡이에게 예전 집 지하실에 갇히게 되는 배경도 추운 겨울이다. 정유정은 이 황량함을 배경으로 인간 욕망이 덧없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며 뜨거워지는 가슴을 계속 식힌다.


랑이 언니는 카프카의 말이라며 “삶이 소중한 건 끝나기 때문이야”라고 한다. 최근에 읽은 『바닷가의 루시』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이 삶에서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선물이다.”라고 했다. 유한한 삶은 어떨 때 공포로 다가오고, 예고치 않은 죽음은 참혹스럽기도 하고, 비탄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영원히 살고, 앞에 무엇이 있는지 확고히 안다면 삶에 무슨 가치를 두어야 할지 막막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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