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신영, 『책 읽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꽤 오래 궁금했던 책이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책에 관한 책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그게 ‘영국인의 책사랑’에 관한 얘기라니...
영국인이 그렇게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의식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여러 경로로 짐작할 수 있는 얘기였다. 그 18세기, 19세기의 기라성 같은 소설가들을 나온 토양이 무엇이겠으며, 그 토양이 쉽게 침식되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유독 ‘영국인의 책사랑’이라고 할 정도인가 싶었고, 정말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왜 그런지, 지금도 그런지, 또 그렇다면 어떻게 그걸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과연 부러울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나라였다.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후 연구 과정을 보내며 영국의 여러 문화를 접한 저자가 특히 책 문화에 천착할 만했다(그럴 만한 직업과 과정을 거친 이라는 것도 감안해야겠지).
산업혁명으로 일군 부가 책과 독서 문화로 이어졌는지, 책을 읽고, 인문과 과학적 소양을 중시한 문화가 국가의 부로 이어졌는지 선후 관계는 분명치 않겠지만, 영국은 그 관계가 매우 행복하게 만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쿠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되고 다른 지역보다는 다소 늦게 인쇄술이 전해진 영국은 어느 샌가 유럽 출판 문화의 중심에 섰다. 출판 문화는 훌륭한 많은 저자를 등장케 했고, 더불어 많은 독자군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책을 만들고, 팔고, 읽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단선적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층위와 경로를 통해 관계를 이루고 서로가 서로를 북돋우며 책의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아마도 그게 세계를 지배하는 영국이라는 존재를 꽤 오랫동안 유지했을 거라 여겨진다.
그런 문화는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부러운 일이다. 독서 인구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는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우리보다는 훨씬 나을 거란 추측도 가능하다. 특히 여러 형태의 북클럽의 활성화와 유치원, 초등학교에서의 독서를 통한 교육은 부럽기 그지 없다. 사실은 부러움을 넘어서, 어떤 당위 같은 것을 인식하게 된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그저 책을 읽어야만 한다고 윽박지른다고 책 읽는 시대가 아니다. 책을 대체할 만한 것은 없다고 믿지만, 그래도 그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많은 시대다.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책을 읽고 토론하는 능력이 사회에서 분명한 인센티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