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윈체스터, 《영어의 탄생》
영어에 뿌리는 분명 있지만(기원전의 켈트족 언어가 있지만 그 영향은 미미했고, 섬을 점령하고 400년 동안 머물렀던 로마인들의 언어도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오히려 대륙의 노르만 지방의 침입자들의 언어가 영어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영어는 아주 다양한 언어로부터 영향을 받은 매우 역동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품위나 순수성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으며 다른 언어의 어휘를 받아들이고, 변형시키면서 현재의 언어를 이루어 왔다. 그 영어의 어휘와 쓰임새에 관해 집대성한 사전이 바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이다. 그 사전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작업이 시작된 이후 거의 70년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1928년의 일이었다. 그 후에도 개정 증보판이 발간되었으며 지금도 수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사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시작과 진행 과정, 그리고 끝을 추적하고 있는 게 바로 사이먼 윈체스터의 《영어의 탄생》이다. 사실은 《옥스퍼드 영어사전》과 관련한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사연을 사이먼 윈체스터의 글로 접한 바가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자원봉사자들 가운데 살인을 저지르고 정신병원에 수감 중이었던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에 관한 이야기로 《교수와 광인》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이 책에도 <은둔자와 살인자>라는 제목의 장에 소개되고 있지만 그다지 극적이지는 않다. 《영어의 탄생》이 《교수와 광인》보다 앞선 책이다). 《교수와 광인》에서도 ‘교수’인 제임스 머리에 관해 적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마이너가 주인공인데 반해 이 책에서는 가난한 스코틀랜드 농촌 출신이자 14세에 정규 학업을 마쳤지만(당연히 대학 졸업장은 없었다), 언어에 미친 3대 편집장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기틀을 잡고 사전 작업에 삶을 바친 제임스 머리가 거의 주인공 격이다. 그와 그의 주변 인물을 통해서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어떤 기준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면서 사전 작업의 중요성과 어려움, 그리고 따분함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역사적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사전이다. 영어는 그 순수성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따라서 어떤 단어가 어떤 식으로 쓰여져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대신 그 단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그 단어의 역사성과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그러한 원칙을 끝까지 충실히 지켜나갔다. 그런데 그 원칙 하에서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작업, 즉 예문을 수집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바로 그 작업을 위해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와 같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활약을 했고, 특히 공험이 많은 이들은 사전의 별책으로 그 이름들이 기려졌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가치는 사전이 담고 있는 어휘나 예문의 수 등에 있다기보다 바로 그 역사성, 원칙으로의 역사성과 사전이 나오기까지의 역사성 모두에 있다고 본다.
이 책의 우리말 제목은 ‘영어의 탄생’이지만, 원제는 ‘Meaning of Everything’이다. ‘모든 것의 의미’. 따지고 보면, 이 책은 영어의 탄생에 대한 책도 아니고(첫 장이 영어라는 언어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전이 모든 것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그러기를 바랐겠지만). 하지만 이 책은 영어가 어떤 언어를 가장 방대하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대한 것이란 의미에서 영어라는 언어의 탄생에 대한 책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영어의 어휘가 뜻하는 모든 것의 예를 담고자 한 이들의 염원과 노력에 대한 책이란 의미에서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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