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제, 『소현세자는 말이 없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8년 만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2달 만에 죽고 만다. 34살. 아직 창창한 나이였다. 다음 세자의 자리와 장차의 왕위는 (원래대로라면 마땅히 돌아갔을) 그의 아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동생 봉림대군(효종)에게 돌아간다. 세자빈이었던 강빈은 사사되고, 세 아들은 모두 제주도로 유배된다. 첫째와 둘째 아들은 유배지에서 죽고, 막내는 살아남지만 20대 초반의 나이로 죽었다. 비극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소현세자의 일생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많이 다룬다(다만 그가 주인공인 경우는 거의 없다). 여러 역사서에서도 재평가하기도 한다. 소현세자와 관련한 재평가는 외교관, 현실주의자, 서양 문물 수용자, 농장 경영인 등의 모습으로 이뤄진다. 거기에 아버지 인조의 광기에 가까운 질투로 독살되었다는 얘기까지. 소현세자는 새로 쓰이고 있다.
젊은 역사학자 이명제는 소현세자의 삶을 어떤 편견 없이 사료를 중심으로 자세히 뜯어보고 있다.
세자 자리와는 무관하게 태어났던 그가 어떻게 세자가 되었는지부터 시작한다. 물론 아버지 능양군이 인조반정으로 임금이 되면서이지만, 그 이면에 놓인 조선을 둘러싼 국제적 정세를 통해서 그의 비극이 싹트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세자가 되기 전 이름부터 바꾸어야 했던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원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록에 없다는 것도 포함하여).
다음은 그가 인질로 잡혀가게 된 과정이다. 바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다. 두 호란의 과정을 아주 자세히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조선이 처한 상황이 단순히 임금을 비롯한 지배층이 무능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소현세자는 8년 동안 인질 생활을 했다. 기약이 없었던 지리한 생활이었다. 그곳에서 청나라의 요구와 조선에서의 기대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소현세자가 그려지고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두 차례의 잠시 귀국했던 사정도 보여준다. 그런데 바로 그 잠시 동안의 귀국을 계기로 인조와 소현세자 사이가 멀어지고, 소현세자가 엇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영구 귀국하고 2달 만에 소현세자는 죽는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삶이 재조명되면서 ’영웅이 되‘는 과정을 되짚고 있다. 이른바 ’소현세자 서사‘다. 그가 살아서 임금이 되었으면 조선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역사의 가정이 종착지다. 그 시작이 일본 역사학자의 연구라는 점이 이채롭고, 그게 별로 각광받지 못하다 21세기 들어서야 조명받는 것도 새길 만한 일이다.
저자는 소현세자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이른바 ’소현세자 서사‘를 부정하는 편에 선다. 포로 해방과 농장 경영은 청태종 홍타이지의 아이디어였으며, 서구문물 수용과 근대화라는 인식의 전환이 소현세자에게서 이뤄졌을 거라는 것도 너무 과한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담 샬이 기록한 소현세자와의 만남도 어느 정도나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한다. 그리고 널리 퍼져 있는 독살설에 대해서도 역시 부정적이다. 소현세자는 원래 몸이 약했고, 청에서도 여러 차례 앓아 누었다. 돌아온 직후에 심하게 아팠지만 침을 맞고 거의 나은 듯했다 다시 악화되어 죽은 것이라고 본다. 인조가 소현세자를 견제한 것은 맞지만, 독살설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다.
’소현세자는 말이 없다‘라는 제목을 다시 생각해본다. 이미 수백 년 전에 죽은 소현세자의 면모를 이 시대에 재조명하면서 어려 각도에서 바라보지만, 정작 소현세자는 거기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수가 없다. 저자는 과거의 역사를 왜곡해서 만들어낸 ’21세기 영웅‘ 소현세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 소현세자를 보고자 했다고 한다. 소현세자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보다 잘 알 수 있는 책을 썼다.
* 그러나 여전히 마음 속에 남는 것은 왜 지금 그런 소현세자를 불러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말이 없는 소현세자이기에 우리가 불러내는 인물은 1637년에 무기력하게 청나라로 끌려가던 청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시대에 대응하려고 했던 그런 인물이 아닐까? 그게 ’소현세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