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야페이, 《5개 원소로 읽는 결정적 세계사》
역사를 어떤 물질을 매개로 서술하는 책은 많이 나와 있다. 그런 책들 각각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점은 어떤 에피소드를 선택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느냐다. 그게 신선하면서도 적절하며, 누구라도 긍정할 수 있는, 그런 소재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일단 선택한 다섯 개 원소는 그다지 독특하지 않다. 찾아보면 ‘다섯’ 개라는 숫자가 좀 독특하긴 해도, 금(Au), 구리(Cu), 규소(Si), 탄소(C), 타이타늄(Ti)과 같은 원소 자체는 매우 낯이 익고, 누구라도 고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타이타늄 정도가 다른 것들에 비해 조금 낯이 설까 싶은 정도다. 그러나 세계사를 통찰하는 데 원소를 이야기하자면 반드시 언급해야만 하는 것들이니 이건 시비 삼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원소들을 세계사 속에서 찾은 이야깃거리는 아주 신선하다.
금에 관해서는 태평양을 발견한 발보아와 그의 부하이자, 그를 배반하고 잉카 제국을 정복한 피사로의 이야기다. 그들은 황금을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갔고, 그만큼 금의 유혹은 역사 내내 뿌리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식이다.
구리에 대해서는 뜻밖에도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얘기를 한다(정말 뜻밖이다). 원래 노란색이었던 자유의 여신상이 녹이 슬면서 지금과 같은 신비로운 색이 되었다는 얘기며, 실제 문제는 구리에 낀 녹이 아니라 철이 부식되는 것이라는 사연은 어쩌면 구리에 관한 본질적인 얘기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이 얘기가 청동기에 관한 얘기(이건 예상할 수 있는 얘기다)로 이어진다.
규소에 관해서는 어떻게든 유리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반도체 이야기로 맺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 예상은 맞았지만, 분량만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과 달리 매우 간략했다. 고대 인류가 바위에 그린 그림 얘기에서 시작할 줄은 더욱 예상할 수 없었고, 만리장성을 벽돌로 쌓은 이유와 규소를 연결되리라고는 전혀 할 수 없던 것이다.
이쯤 되니 탄소야말로 소재가 많을 것이니, 무슨 얘기를 꺼낼지 궁금했다. 쑨야페이는 (탄소로 이루어진) 화학섬유를 언급하면서 탄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단맛의 역사(그러니까 사카린 얘기다)를 한 후에야, 비로소 누구라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탄소 에너지 얘기를 한다.
이른바 신소재인 타이타늄에 관한 얘기도 뜻밖에 소재에서 시작하고 있고, 또 뜻밖의 이야기를 맺고 있다. 중국의 달 탐사선 얘기로 시작해서 비행기, 잠수함을 이야기하고, 프랑스 건축가 얘기로 맺고 있다(실제로는 타이타늄을 만든 인공 다리가 진짜 마지막 얘기지만). 바로 중국 베이징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고 있는 중국 국가대극원를 설계한 앙드뢰가 그 인물이다. 그는 타이타늄을 소재로 그 건물을 설계했다.
이렇게 보면 매우 보편적인 원소 이야기를 매우 신선한 이야기 소재를 통해 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신선한(?) 점은, 다른 비슷한 책들과는 달리 중국 얘기가 훨씬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중국인 저자이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의 역사와 현대의 과학이 그만큼의 내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한 가지는 저자가 다른 문헌에 널려 있는 서양의 얘기 대신 애써 중국의 역사에서 이야깃거리를 찾고자 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또한 화학자가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에도 매우 관심이 많고 거의 전문적인 소양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신선하고, 배울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