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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Oct 01. 2024

뭉크, 인간의 내면을 그린 화가

이미경,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

에드바르 뭉크 하면 연상되는 그림은 뭐니뭐니 해도 <절규>다. 현대인의 절망이 드러난 그림이라고 한다. 물론 이 그림에 얽힌 사연은 잘 알려져 있다. 뭉크 개인사와 자연 현상에 관한 얘기다. 그런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 감정으로 승화시킨 뭉크는 대단한 화가다. 



<절규>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애틋하게(?), 혹은 가장 감정 이입해서 보아온 그림은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이다. 뭉크가 말년에 그린 자화상이다(뭉크는 정말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양복을 입고 침대와 시계 사이에 반듯하게 서서(정확히는 반듯하게 서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이다. 스페인독감에서 회복된 후, 이제 평생 두려워했던 죽음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노년의 쓸쓸함과 이제 모든 것을 두고 갈 수 있다는 편안함이 함께 드러나는 그림이다. 


또 관심이 가는 그림도 있다. <아픈 아이>와 <유산>, <스페인독감에 걸린 자화상> 같은 그림들이다. 뭉크의 개인적 아픔이 드러난 그림이기도 하지만, 모두 감염병과 관련된 그림들이다. 매우 타산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림이다. 


뭉크는 고흐와 함게 인간의 내면을 그린 최초의 화가다. 고흐보다 더 극적으로 내면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고, 그 느낌은 불안하고, 어두웠다. 거기에는 비극적인 가족사와 그것을 받아들인 뭉크의 정신세계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19세기말, 20세기 초, 나아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감정과 다를 바 없었다.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미완성적이라고 했다), 결국에는 그 내면의 모습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뭉크는 현대를 연, 특히 현대인의 감성 세계를 들여다보고 파헤치고, 표현한 화가가 되었다. 


뭉크의 그림을 검색해보면 같은 제목인데도 조금씩 다른 그림을 함께 찾을 수 있다. 뭉크는 채색화의 경우에도 같은 그림을 여러 차례 그린 화가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작품을 ”내 자식“이라고 여겼고, 작품을 팔고도 다음 날 구매자를 찾아가 돌려 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작품을 돌려받지 못하면 똑같은 작품을 다시 그렸다. 그렇게 같은 그림을 여러 차례 그렸고, 그것들을 자신의 집에 두었다(말년엔 나치에게 빼앗길까봐 오슬로 시에 몽땅 기증해버렸다). 



뭉크에 대해 알고 있던 것보다 모르고 있던 것들이 많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책 제목이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 고개가 갸웃거려지고 잘못된 것이 아닌가 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와는 다른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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