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솔터, 『해부학자의 세계』
“해부학은 허공에 존재하지 않았다. 해부학의 발전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형성되었고, 종교적 관행에 의해 제한되거나 잔혹한 전쟁과 부상병 치료 중에 발전했으며, 해부학 자체나 전혀 다른 분야의 기술 혁신으로 진보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넘치는 호기심과 용기로 실험에 도전한 과학자들이 주도했다.” (361쪽)
우리는 자신의 몸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특히 피부 아래에 존재하는 기관과 조직, 그리고 그것들의 연결 관계는 겉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을 알아내는 학문을 해부학(解剖學, anatomy)이라고 한다.
인간은 무엇이든 알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동물이고, 그 알고자 하는 대상 중 맨 처음에 놓인 것은 바로 ‘우리 몸’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해부학은 아주아주 오래된 학문이다. 물론 아주 오랫동안 잘못 알고 있던 것이 많았다. 심장과 뇌의 기능을 두고도, 피가 순환하는 것인지, 생겼다가 그냥 없어지는 것인지, 자궁에 여러 개의 방이 있는지 등등을 두고 잘못된 해석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조금씩 우리는 알아 나갔다. 늘 바른 방향으로 진전된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우리 몸의 진짜 모습을 알아 나갔고, 우리 몸 각 부분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그것들 각각이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를 알아 나갔다. 무려 5000년의 여정이다. 콜린 솔터의 『해부학자의 세계』는 바로 그 위대한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해부학의 역사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에서 시작해서 고대 로마의 갈레노스로, 갈레노스의 해부학은 1000년 이상 지속되다 코페르니쿠스의 책과 같은 해(1543년)에 혁명적인 책 『파브리카』가 나오고, 이후 19세기(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기 바로 전 해) 헨리 그레이의 『그레이 해부학』까지 이어진다는 것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정도만 말하더라도 해부학 교실의 교수님은 눈을 뚱그렇게 뜨고 쳐다볼 정도이긴 하다.
그런데 어떤 학문의 역사가 이렇게 뜨문뜨문 혁명적인 한두 명의 업적만으로 기술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들보다는 조금 덜 인정받았지만 훌륭한 진전을 이룬 이들이 있었을 것이고, 혹은 아주 작은 벽돌 하나를 얹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학문의 방향을 틀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 분야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역사는, 과학과 의학의 역사까지 포함해서 위인만의 역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굴곡이 있으며, 그렇게 해야만 나의 현재 존재 가치를 긍정할 수 있다.
콜린 솔터의 작업은 물론 해부학에 국한되어 있지만(조금, 아주 조금 벗어난 경우가 없진 않다. 이를테면 레이우엔훅 같은 경우), 굵직굵직한 흐름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의 작업이 중요한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독창적인 작업뿐만 아니라, 표절로 얼룩진 사례까지도 소개하고 있다. 현대의 의학이 바로 이러한 오류들을 딛고 여기까지 왔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덕목은 240여 컷에 달하는 도판이다. 전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도판들은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것들 천지다. 물론 징그러워 바로 다음 장의 그림으로 넘어가야 하는 경우도 없지 않고, 다소 관능적인 그림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 하나에 들어가는 지식을 얻어내고 표현하기 위해서 해부학자들이 어떤 노력을 했을지를 상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지금 해부학자들의 서재에는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 모른다. 이 고색창연한 옛 해부학자들의 책들은 거의 꽂혀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지식은 역사적인 지식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지금 해부학자의 서재에 꽂혀 의사와 의학자 들이 우리의 몸을 이해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데 이용하는 책에는 바로 그런 책들이 이미 들어 있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현대의 해부학은 현미경, 엑스레이, 나아가 CT와 MRI 등의 도움을 받아 인체를 파악한다. 그러나 여전히 의과대학생들은 실제 시신을 해부해야만 제대로 된 인체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책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해부학 교재 모형이 아주 정교해졌고 VR도 아주 현실감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대체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오랜 교육 방식이다. 바꾸기 쉽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