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윈체스터, 《크라카토아》
1883년 8월 27일 월요일 오전 10시 2분.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과 자바섬 사이에 위치했던 한 섬이 폭발했다. 이미 몇 달 전에 소규모 폭발이 있었던 섬이었는데, 이날의 폭발은 지금까지 지구가 겪어왔던 폭발 중 다섯 번째로 큰 폭발이었고,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겨진 폭발 가운데 가장 큰 폭발이었다. 24시간 조금 넘게 지속된 폭발로 섬은 자취를 감추어버렸고, (주로) 폭발로 인한 해일로 3만 명이 넘는 인명 피해가 났다.
크라카토아섬. 원래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던 섬이 아닌지라 종종 다른 이름으로 잘못 불리었던 섬이었다. 수마트라와 자바라는 커다란 섬 사이의 순다 해협의 뾰족섬으로 그곳을 운항하는 선박들에게나 관심을 받던 섬이었다. 그 섬이 그렇게 폭발할 것이라고, 또 그래서 많은 인명 피해가 나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아니 그때는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있었지만, 지금 시각으로 보자면 다 서툴고 전혀 엉뚱한 설명이었다. 그러니 그 불가항력적인 현상과 힘은 더욱 크게 보였고, 실제로 지구의 역사에도 커다란 영향을 줬다. 폭발과 함께 생긴 화산재 등은 하늘을 뒤덮었고, 그 지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영향을 주었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의 발흥과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유럽이며 아시아 등의 기상 변화로 인하 생산량 저하는 잦은 폭동으로 이어지고 정치 체제의 불안을 가져왔다. 지구 한 켠에 존재했던 한 섬의 폭발은 전 지구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크라카토아라고 하는 한 섬의 폭발과 그 영향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위치도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고, 그게 어떤 과정을 거치고, 또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자연적인 사건을 지역의 역사와 과학적인 설명과 사건의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영향 등을 폭넓고 깊게 설명한 사이먼 윈체스터를 통해 큰 의미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실 놀랍다. 그 사건의 규모나 영향도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소재로 관련된 인도네시아와 관련된 식민의 역사(즉, 바타비아, 현재의 쟈카르타와 관련한 역사)와 과학(윌리스 선이라든가, 화산 활동과 관련된 판 구조론이라는 과학) 등을 이렇게 절묘하게 연관시키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 사이먼 윈체스터이 통찰이랄까, 필력이랄까 하는 것들이 더욱 그렇다. 사이먼 윈체스터가 지질학 전공이었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그래서 판구조론에 대한 설명은 더할 나위 없이 전문적이다), 역사와 문화까지 아우르는 그의 실력은 이 책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에서도 이미 겪은 바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책의 중심과 절정은 8장의 <대폭발, 해일 그리고 운명의 날>이다. 가장 길기도 하지만, 역시 그 장엄하지만 비참한 장면을 긴박하면서도 깔끔하게 쓰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자연 앞에서 미약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지도 느끼게 되는데, 그건 사이먼 윈체스터가 인용하고 있는 윌 듀렌트의 다음과 같은 경구에 적극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문명은 지질학적인 동의(geological consent)가 있어야 존립할 수 있는데, 이것은 예고 없이 철회되고 한다.“ 크라카토아는 이를 너무나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크라카토아가 사라진 그곳에 새로운 섬, 아나크크라카토아, 즉 크라카토아의 자식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생명이 다시 꽃피우고 있다. 정말 장엄한 역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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