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 『근대를 살다』
우리의 근대는 불행했다. 제3세계의 근대성은 서구의 식민주의와 함께 얽혀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더욱 복잡했다. 우리는 우리보다 아주 조금 빨리 근대성을 받아들인 같은 아시아 국가의 식민지가 되었으니 근대라는 개념은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다. 민족주의가 근대화를 멈칫거리게 하기도 했지만, 그 근대화를 강제로 이식한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이 되기도 했다. 동아시아의 가치를 내세우면 서구의 무조건적인 근대화에 대한 비판으로서 가치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일본의 논리에 동조하는 형식이 되기도 했다. 아무튼 복잡했다.
복잡했기에 그 근대의 시기를 살다간 인물들의 스펙트럼도 무척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해 보이는 이념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결국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경우도 많고,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의 이념적 배경도 다양했다. 그런 ‘근대를 살다 간’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근대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긴 여러 부작용과 오류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에 대한 힌트가 될 것이다. 김경일 교수가 여러 근대인들의 삶과 여정, 사상을 연구하고 기록한 이유다.
일부를 조금씩 요약해 본다.
가장 먼저 유길준과 윤치호를 비교하고 있다. 최초의 유학생으로 가장 먼저 서구의 근대화를 접한 이들이다. 그들은 똑같이 서구의 높은 수준의 문명을 부러워하고, 조선의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그들은 근대성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유길준은 유교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삼았고, 윤치호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깊이 몰입했다. 두 사람의 삶의 배경이 달랐던 것이다(양반 가문과 서얼 출신 무관의 아들). 그들은 결국 국가주의와 개인주의로 갈렸다. 그러나 어느 쪽이나 먼저 근대화한 일본을 동경하고 선망하며 지배를 용인했다.
안중근에 대해서는 ‘민족의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안중근은 유길준이나 윤치호처럼 서구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근대성은 피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윤치호와 비슷하게 동아시아라는 지역과 같은 인종에 기반을 둔 공동체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와 달리 안중근의 민족주의는 열려 있었다. 그는 식민성을 거부한 근대성을 추구했다.
한상률이란 인물은 낯설다(들어는 봤다). 한성은행을 중심으로 활약한 은행가였다. 철저히 일제에 협력하고 그들의 비호 아래 활동했지만, 끝내는 그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의 근대화는 철저히 경제적인 것이었지만 일제 의존적인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식민성에 대한 고민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김경일 교수는 그에게서 1960년대 이후의 맹목적 근대화 지상주의의 원류를 찾아내고 있다.
이 책에서 여운형에 대한 장이 가장 길다.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이다.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 민주주의 등의 여러 사상이 얽혀 있고, 그것들의 경계가 모호하고 불명확하다. 그의 사상의 일관성을 찾아내 ‘여운형주의’라고도 하지만, 서로 어긋나는 발언도 많았다. 매우 복합적인 사상을 가졌던 여운형은 끝내 식민성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계급과 민중을 조망하는 위치까지 다다랐다(“민중을 통해 민주와 민족은 하나가 된다.”)
안재홍에 관한 키워드는 ‘좌절’이다. 안재홍과 관련해서는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안재홍은 근대성이라는 보편주의와 민족이라는 특수주의를 결합하기 위해서 열렬히 노력했고, 어느 한 극단으로의 편향을 경계했다. 그리고 식민성에 굴복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민족이라는 특수성에 보다 집착하면서 ‘시간이라는 보편성’을 잃어버렸다. 그의 중용은 실패했고,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게 김경일의 시각이다.
이 책에서 조금 의외로 생각하여 김경일 교수가 어떤 이인지 찾아본 게, 바로 6장과 7장 때문이다. 여성에 대해서 2개의 장이나 할애한 것이다(물론 기계적인 분량으로 따지면 여전히 남성들보다 적지만, 당대의 인물들의 분포를 보면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이다). 6장에서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서구를 여행했던 세 여성, 김마리아, 박인덕, 허정숙을, 7장에서는 1920년대 신여성으로서 자유연애, 남녀평등 등을 주창한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마리아, 박인덕, 허정숙은 모두 미국을 경험하고 그 문명의 휘화찬란함을 경이롭게 바라보았지만,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고, 대응도 달랐다. 독립 운동을 펼치다 실질적으로는 망명으로 미국에 도달한 김마리아는 고국에 돌아와서는 여성 교육에 침잠했고, 박인덕은 미국에 대한 동경과 찬사를 통해 근대성마저 형해화했고, 결국은 친일의 길을 걸었다. 사회주의자 허정숙은 미국의 물질주의를 비판하였고, 근대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대신 그녀에게서 여성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나혜석에게서는 근대성으로의 여성주의는 도드라지지만 식민성에 대한 인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녀에게는 가부장적 족쇄가 일본의 지배보다 더 가혹한 것이었고 먼저 타파되어야 할 것이었다.
이 책에서 ‘발견’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1930년대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미야게 시카노스케다. 그는 노동운동가 이재유, 정태식 등과 함께 공산주의 운동과 독립 운동에 연대했다. 경성제국대학이라는 식민 지배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면서 피지배 진영에 서서 식민 지배 기획을 부정했던 것이다. 이런 인물들이 많지는 않았겠지만, 근대성과 식민성이라는 게 굉장히 복잡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9장과 10장은 개별적인 인물이 아니라 당시의 사상 전향과 동화주의에 대한 분석이다. 사상 전향이 일본에서는 자애성, 한반도에서는 폭력성이 더 도드라졌고, 그때만 사상 전향의 의미와 여파, 영향마저 달라졌다는 점, 일본이 끈질기게 주장한 동화주의가 결국은 일방적 지배와 수탈을 위한 이론이었다는 점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읽다 국적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 부분은 최근 무척 논란이 되기도 했던 내용이라 인용해보면 이렇다.
“강제 병합에 따라 조선인의 법적 지위는 ‘일본인’으로 변경되었지만, 이는 ”한국인이 전적으로 일본인과 동일하게 되“었다기보다 ”다만 외국에 대해 일본 국적을 얻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즉, 조선인은 외국에 대해 일본인이 되었지만, 일본인으로서 두 민족 사이에는 엄연한 구별(차별)이 존재했다.”
국적이라는 문제가 단지 여권에 찍힌 문자를 의미하는 것인가(당시에 얼마나 여권을 가졌을까만은)? 내가 어느 나라의 국민인지에 대한 인식과 실질적인 상황이 본질적인 것이 아닌가? 당시에 한반도에 사는 이들(재조 일본인을 제외하고) 가운데 스스로 일본인이라 여겼던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당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국적이 ‘일본’이 아니고 무엇이었냐고 하는 주장에는 일본의 동화주의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에 대해 눈감거나 무지한 것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