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윤, 『그거 사전』
뭔지는 분명 아는데, 명칭을 모르는 그런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대화를 하면서 “그거 말야.”, “그래 그거.” 이 정도로도 통하는 물건들이다. 보통의 명사 대신, “거 있잖아, 피자 배달 주문하면 피자 가운데에 포장 상자를 받치는 그거.” 이러면 다들 아는 그런 것들. 의식하지는 않지만 그런 게 정말 깔렸다.
바로 ‘그거’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 이름을 찾아주고 있다. 유래를 쫓아보고, 또 잘못된 속설을 깨고, 어떤 경우엔 그 근처의 여러 유용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사실 그런 책이 이미 있긴 하다. 헨리 페트로스키의 《물리적 힘》. 거기서는 명칭과 유래에 관한 일화도 소개하지만 ‘물리적’인 원리에 더 힘을 싣고 있다. 좀 가볍게, 더 많은 사례를, 또 우리나라와 연관지어 보기 위해서는 이 책이 낫다(물론 반대의 경우엔 헨리 페트로스키의 책이 낫다).
76개의 물건을 소개하는데, 알고 있던 것은... 글쎄 한 열 개쯤 되려나? 단 한 개도 빼놓지 않고 그림과 간단한 설명으로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들임에도 그렇다. 명칭을 읽고 나면 아하! 싶은 것도 많지만, 별로 감흥이 가지 않는 것도 없지는 않다. 너무 삭막한 명칭들, 이를테면 귤락, 약장(혹은 서비스 리본), 스톨 같은 것들이다.
정말 잊히지 않을, 아니 꼭 기억하고 싶은 명칭도 있다. 레이지 수잔(혹은 덤웨이터), 가름끈, 똑딱 프레임(혹은 키스 로크), 스푸너리즘 같은 것들이다. 유래를 가진 이름이면서 어떤 용도인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다.
미묘한 차이를 갖는 말들도 있다. 무슬림 여성들이 얼굴에 두르는 ‘그것들’, 즉 히잡, 차도르, 부르카의 차이나, 우리가 흔히 베란다라 부르는 발코니와 실제 베란다, 그리고 테라스의 차이 같은 것들이다(여기서 배우고서도 여전히 헷갈릴 게 뻔하고, 또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대로 나도 부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그런데 사실 거의 다 읽으면서 이렇게 명칭을 모르면서도 별로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많다는 것도. 그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게 그런 은밀하게 공유된 인식의 틀 속에서 이뤄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덧붙여 그렇게 사소한 것들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도 의미할 터이다.
그래도 명칭을 알는 것이 낫다. 단지 아는 체 하는 것을 넘어선다. 이름은 그것의 역사를 반영하고, 용도를 정한다. 저자가 쓰고 있듯, “이름은 힘이 세다.” 어떤 이름을 쓰는지에 따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사물의 이름에 관한, 별로 심각하지 않게 써내려간 이런 책이 단순한 심심풀이를 넘어서는 지점들이 분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