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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Nov 30. 2024

은퇴한 스파이, 과거의 망령에 불려나오다

테스 게리첸, 『스파이 코스트』

첫 장면을 읽으면서 지나 데이비스 주연의 영화 <롱 키스 굿 나잇>을 떠올렸다. 물론 설정은 다르다. 한 여인은 기억을 잃고서, 또 한 여인은 자발적인 이유로 스파이 일에서 벗어나 있었고, 그들이 다시 총을 쏴야만 하게 되는 이유도 다르지만.      


은퇴한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다룬 소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은퇴한 스파이들이 모여사는 동네라니... 의사 출신 작가 테스 게리첸은 <작가 노트>에서 자신이 그런 마을에서 살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고 있다. 실제 그런 마을이 있다. 소설에선 메인 주 퓨리티라는 해안 마을이다. 그래서 소설 제목도 <스파이 코스트(The Spy Coast)>다.      


매기 버드는 은퇴한 지 이미 16년이나 된 여인이다. 그의 마지막 임무는 비극으로 끝났고, 그 기억을 잊기 위해, 혹은 누구도 자신을 찾을 수 없게 한적한 마을로 숨어들었다. 닭을 키우며 달걀을 팔며, 이웃인 전직 하버드대 교수와 손녀와 교류하며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자신을 그곳으로 불러들인 은퇴한 요원들과 ‘마티니 클럽’을 만들어 책을 읽고, 한담을 나누며.      


그런 삶이 그냥 이어질 수는 없다. 적어도 이 소설이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라면 말이다(책 띠지에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다).      


그녀의 정체를 아는 이가 집을 찾아오고, 그는 이후 시체가 되어 그녀의 집 앞에 놓여진다. 총격을 받기도 한다. 아마도 16년 전의 그 작전 때문이었으리라는 직감. 그러나 과연 누가 그 일을 알아내어 그녀를 위협하는지 알 수 없다. 그녀는 그것을 알아내야 한다.      



소설은 과거 행복했던, 혹은 기만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면서 현재와 연결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매기 버드가 중심이지만, 그의 곁에는 마티니 클럽의 멤버, 그러니까 전직 CIA 요원들이 있다. 그리고 작은 마을 퓨리티의 경찰 서장 대리 조 티보듀가 있다.    

  

조 티보튜는 시체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 매기 버드와 사건을 추적하는 데 자신보다 훨씬 능숙하고,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들에 놀라며 그들의 정체가 궁금하다. 마티니 클럽의 멤버와 조 티보듀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은 소설의 전체 흐름에서 그다지 결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만약 이 부분이 없다면 소설은 너무 삭막해서 이야기의 뼈대만 남아 비틀어져 버렸을 듯하다. 소설에 윤기가 흐르게 하는 것이다.  

    

스파이 소설이고, 특별히 유쾌한 캐릭터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적지 않은 인물이 이렇게 저렇게 죽어 나가지만, 소설은 유머러스하다. 은퇴한 스파이들이 그저 과거의 자신을 향수로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자신들의 쓸모를 증명해나가는 과정이 그렇다. 목숨을 걸 정도의 모험이 아니라면 충분히 꿈꿔볼 유쾌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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