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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Dec 15. 2024

스티븐 킹이 동화를? 그만의 동화!

스티븐 킹, 『페어리테일 1』



평생 그렇게 희한하도록 비현실적이고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이었다. 나비 떼가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우리 위를 날아갔고, 나는 그들의 날개가 일으킨 바람을 느끼며 마침내 이 다른 세상의 현실을, 엠피스의 현실을 완전하게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있었던 곳이 가상의 세계였다.
여기가 현실이었다.
 

스티븐 킹이 동화를? 진짜다. 제목부터가 “Fairy tale”, 동화다. 혹시 ‘잔혹한’ 같은 형용사가 생략되어 있는 건 아닌지, 반어적 의미로 쓴 건 아닌지 싶지만, 적어도 1권까지는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다. 


중반까지는 어느 착한 학생의 성장기 같은 이야기 같다가 어느 순간 판타지로 접어든다. 우연히 동네의 기괴한 집에 사는 할아버지 보디치를 구하게 된 평범한 고등학생 찰리 리드는, 보디치가 죽자 유산을 물려받는다. 할아버지의 반려견 레이더와 교감을 나누게 되면서 레이더를 살리기 위해 ‘세상의 우물’로 들어간다. 


스티븐 킹은 천연덕스럽게 여러 동화들의 이야기(<잭과 콩나무>, <오즈의 마법사>, <아기돼지 3형제>, <럼펠스틸스킨>)를 자신의 이야기 속에 넣고 있다. 그러나 스티븐 킹이 누군가? 그냥 짜깁기가 아니라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하고 있다. 


기꺼이 모험을 택한 찰리. 그의 앞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 **


스티븐 킹은 이야기를 꾸며 내는 떼도 장인이지만 자세한 묘사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에서도 꼼꼼하기 그지없는 스티븐 킹의 묘사가 펼쳐진다. 이런 묘사를 하려면 관찰력도 필요하지만, 집중력과 끈질김도 필요하다. 그걸 모든 작품에서 보여준다.  


부엌은 오래된 제품들로 가득했다. 스토브는 핫포인트였으며 사기 개수대는 우리 동네가 센물이라 동그랗게 녹이 슬었고, 수도꼭지에는 바퀴살 모양의 옛날식 손잡이가 달렸고, 바닥에 깔린 리놀륨은 심하게 닳아서 무늬가 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간 자체는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식기 건조대에는 접시 한 장, 컵 한 개, 은식기 한 세트(나이프, 포크, 스푼)가 있었다. 그걸 보니 슬퍼졌다. 바닥에는 테두리를 따라 RADAR(레이더)라고 적힌 깨끗한 그릇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도 보니 슬퍼졌다. 

전체 흐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보디치 씨의 부엌에 대한 묘사가, 그것도 처음 들여다본 고등학생 눈에 비친 모습이 이렇게 자세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읽는 우리는 이 성실하고도 끈질긴 묘사를 통해 장면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할리우드는 스티븐 킹을 사랑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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