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페어리테일』
스티븐 킹이 동화를 쓴다는 것부터 화제였을 것 같은데, 그게 정말 동화였다는 것은 더욱 큰 놀라움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동화가 역시 스티븐 킹이 쓴 동화라는 표식이 뚜렷하다는 사실은 신기할 따름이다.
우연한 사건으로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우물을 발견한 17살의 소년 찰리 리드. 그건 죽음을 앞둔 개 레이더에게 젊음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그 세계를 알려준 보디치씨에게 황금의 원천인 엠피스라는 또 다른 세상은 내가 성급하게 예상했던 ‘무릉도원’이 아니었다. 찰리 리드를 기다리는 것은 망가진 세상이었다. 세상도, 사람도 모두 회색으로 변해가고, 입, 눈, 귀 어느 하나는 닫혀버리고, 팔다리는 뭉개져버리는, 말하자면 디스토피아와 같은 세상이었다. 찰리 리드는 레이더에게 젊음을 줄 수 있었지만 잡혀버리고, 지하 감옥에 갇힌다. 그곳에서 찰리 리드는 금발에다 파란 눈을 가진, 예언 속의 ‘왕자님’이 되어 간다.
동화이되 피가 튀긴다. 그림 형제의 동화가 원래는 잔혹한 내용이었다는 것을 1권에서부터 여러 차례 상기시키고 있는 이유도 아마 2권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잔혹 동화의 성격을 인지시키고자 하는 의도인지도 모를 정도다.
스티븐 킹은 여러 동화를 아무렇지 않게 차용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뻔뻔스럽게 내놓기도 하는데... 어차피 동화이고, 어차피 판타지라는 투다. 시작부터가 누구도 믿지 못할 얘기였는데, 이런 얘기까지 한다고 뭐 어떠랴는 식이다. 그야말로 판타지인 셈이다. 상상력을 있는 대로 작동하고는 그 속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도 그 세계에서 어쩔 수 없이 빠져들어 함께 놀아보라는 식으로.
사실 스티븐 킹이 그리는 마법의 우물 건너의 또 다른 세상이, 비록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지만 그들이 본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더 마법 같아 보일 거라고 보고 있다. 총도 모르고 인터넷, 휴대폰도 모르는 세상에서 보면 이 세상은 마법으로 가득차 보일 터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동화에 나오는 마법이 없는 곳이었고, 이 세상에서는 내 세상의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2권, 18쪽)
"아무리 놀라운 것이라도 지나고 보면 익숙해지게 되어 있다. 그뿐이다. 인어와 아이맥스, 거인과 휴대전화. 자기가 사는 세상에 그런 게 있으면 그냥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놀랍지 않으가. 다르게 생각하면 끔찍하기도 하다. 고그마고그가 무섭다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 세계를 끝장낼 수도 있는 핵무기를 깔고 앉아 았는데, 그게 흑마술이 아니라면 뭐가 흑마술인지 모르겠다." (2권 181쪽)
어쩌면 동화 같은 세상, 마법의 세상을 마음껏 상상하면서 이렇게 상상한 마법의 세상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더 마법 같고, 혹은 위험한 세상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게 스티븐 킹의 의도는 아니었나 싶다. 물론 소설을 읽는 재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