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프리들・셜리 미하엘라 소일, 『피, 생명의 지문』
라인하르트 프리들은 심장외과 의사다. 심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외과적으로 고치는 사람이다. 심장을 꿰매는 사람이다. 이 책도 아프가니스탄 이주 청년이 심장에 칼이 찔려 박힌 채 이송되어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심장은 혈액 순환의 중심 기관이다. 피를 모으고, 보내면서 우리 몸 전체에 피가 돌게 하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심장을 다룬다는 얘기는 또한 피를 다룬다는 얘기가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심장과 피에 관한 얘기이고, 그 심장과 피가 우리 삶과 건강에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관한, 때론 익숙하고, 때론 낯선 이야기다.
심장에 칼이 박힌 채 응급실로 들어온 청년에게 삶과 죽음은 피를 돌게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저자는 그 복잡한 수술을 하면서(심장을 수술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오래된 얘기도 아니다) 부딪치는 문제가 모두 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수술에 관한 이야기는 TV 의학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긴박감을 느낄 수 있고, 혈압을 낮추거나 높이는 문제가 우리의 상식과 다르다는 것도 배운다. 그리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도, 그게 일차적인 성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그리고 이후의 패혈증에 관한 문제 역시 피에 관한 문제라는 것도 지적한다. 패혈증 관련해서는 미생물학자나, 감염내과 의사 등과는 관점이 조금 다르다는 것도 비로소 깨닫는다. 피에 관한 얘기가 수혈, 혈액은행, 더럽혀진 피, 즉 인종 차별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정작 이 책에서 대하는 낯선 이야기들이 있다. 그건 우선은 과학과 의학의 얘기다. 앞에서 얘기한 대로 수술 시의 혈압 문제도 그렇지만, 가장 의외인 것은 심장의 역할에 대한 이론(異論)이다. 흔히 우리는 심장을 펌프에 비유한다. 데카르트 시대 이후로 거의 죽은 비유 같은 것이다. 그만큼 익숙한 인식이다. 보통의 의사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본다. 그런데 라인하르트 프리들은 심장이 펌프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음을 지적하고, 오히려 피가 움직이기 때문에 심장이 작동한다고 본다(여기에는 핵도, 유전물질도 없는 적혈구의 작동 방식도 포함된다).
그런데 더욱 낯선 이야기는 과학과 의학의 이야기이면서 조금은 곁방향으로 흐른 얘기다. 이를테면 심장과 영혼과의 연결이 그렇다. 심장이 의식을 담당한다고 여겼던 것이 고대의 심장에 대한 생각이었는데, 현대에 와서 그게 어쩌면 상당히 맞을 지도 모른다는 설명은 참 낯설다. 이것을 단순히 인체의 모든 기관이 연결되어 있다는 식의 인식이 아니라 실제로 심장을 치유함으로써 정신까지 치유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니 더욱 그렇다.
심장과 피 없이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 상식이다. 이 책은 그런 상식을 진짜 지식으로 업그레이드한다. 그렇게 지식이 된 상식은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