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프 자우하르, 《내가 알던 사람》
심장내과 의사 샌디프 자우하르(https://blog.naver.com/kwansooko/221795983559)의 아버지가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책이 시작된다. 그렇다. 뛰어난 농업과학자였던 저자의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즉 치매에 걸린 것이다. 뛰어난 지성과 추진력의 소유자였던 아버지가 점차 무너지는 과정을 보는 가족들의 안타까움과 갈등이 그려진다. 그리고 알츠하이머 질환과 인간의 인지, 기억에 관한 내용.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에 관한 관찰과 회고이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아버지와 환자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저자의 탐구라고 할 수도 있다. 아버지는 왜 그럴까? 그것은 점차 기능을 잃어가는 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뇌과학의 영역이다. 하지만 저자는 뇌과학의 ‘과학’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과 형과 여동생의 감정 등이 이 탐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와 가족들이 아버지에 대해 늘 애틋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이 많았고, 그것 때문에 갈등도 많았다. 아들들은 훈계했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다 포기하기도 하고. 방식도 서로 달랐다. 사회보호시설에 보내자는 견해와 그러면 안된다는 견해가 맞부딪치고,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의견도 갈린다. 마지막 순간에 수액과 같은 소극적인 연명 치료를 지속해야 하는지를 두고도 갈등한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하다. 그는 완벽한 아들이 아니었고, 너무 서투르고 게으른 간병인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의 얘기는 어떤 정답을 갖는 게 아니라 우리 보편적인 모습이다. 어디서나 늘 볼 수 있는,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고 시린.
치매 환자에 대한 의료 체계 문제도 지적한다. 저자나 저자의 형이 모두 의사인 점을 볼 때, 그런 환자를 곁에 두고서야 그 문제가 보이는 것도 의아한 일이지만 그쪽 분야도 상당히(아니 지독하게) 분업화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의 문제 제기는 미국의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라고 다를 수는 없을 듯하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두고 갈등하면서, 저자는 인간의 뇌를 이해하고, 그런 뇌에서 비롯된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정한다.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고. 그래서 과학에 더해 ‘관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인간은 단독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세상과 단절되기 시작한 한 인간을 보면서 깨닫는 것이다.
이 책은 솔직하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매우 뛰어난 지성을 지닌 인간마저도 삼켜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잔혹하다. 또한 그런 환자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과 잘못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또한 이 책은 따뜻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깨달음이 있고, 나아갈 수 있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들에게, 당신들만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란 위로를 던지고 있기도 하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