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렌 스와미, 《비너스의 사라진 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은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혹은 없다면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일까?
루브르 박물관에 모셔진 ‘밀로의 비너스’. 누구라도 이 조각상을 아름답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 조각상은 아름다운 것일까? 아니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일까? 비렌 스와미의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다시 이야기는 비너스, 즉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이야기, 혹은 트로이를 멸망으로 이끈 이야기로 시작된다. ‘파리스의 심판’. 여기에는 아주 다양한 의미가 숨어 있지만, 이 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아름다움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질문이다.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황금비율을 언급한다. 고대 건축물의 이상적인 수학 비율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를 인간의 몸에도 적용했다. 이게 정답인 듯싶다. 그러나 여러 연구자들은 황금비율이 그리스 조각에서도, 건축물에서도, 그림의 표현에서도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게 정답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허리-엉덩이 비율’은 어떤가? 1990년대 초 진화심리학자 데벤드르 싱이 제안한 비율이다. 그는 미인대회나 플레이보이 모델 등의 여성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결과 사람들이 아름답게 여기는 ‘허리-엉덩이 비율’이 0.7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이 비율이 건강과 생식력의 지표이기 때문에 이 비율을 선호한다는 해석과 함께.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황금비율처럼 이 ‘허리-엉덩이 비율’, 나아가 진화심리학의 ‘주장’에 의문을 품는다. 우선은 ‘허리-엉덩이 비율’, 0.7이란 것이 모든 연구 결과에서 다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이것은 인류의 진화 이후 늘 생각했던 아름다움의 비율이 아닐뿐더러, 지역마다, 인종마다, 환경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리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름다움은 가변적인 것이다. 어떤 한 기준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거의 절반을 ‘허리-엉덩이 비율’과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는 데 쏟고 있다. 여기에는 루벤스의 그림을 통해 과거의 미의 기준이 어땠는지, 아름다움의 이상을 저버린 에두아르 마네 그림이 왜 훌륭한지 등에 관한 내용도 포함한다.
또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데도 의문을 제기한다. 남성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도 있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 신체적 매력과 부와 지위 사이의 연관성을 중시한다는 관점, 즉 “중저가 옷을 입은 남성보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을 여성이 더 좋아한다”는 (역시 진화심리학의) 이론을 비판한다.
다시 ‘밀로의 비너스’로 돌아와서, 첫째 장부터 밀로의 비너스 상의 불완전한 면을 지적했었는데(‘밀로의 비너스’는 보통의 생각과는 달리 대칭적이지 않다), 그 불완전함을 해석하는 관점도 매우 다양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름다움은 완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비너스는 두 팔이 없고 오른발은 30㎝가 넘어 거대하며 전체적으로 균열이 많고 코끝은 사라지고 왼쪽 젖꼭지는 도려내 졌다. 한마디로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비너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저자는 말한다. “아름다움은 불완전함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가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누군가에게 아름답게 보인다.”
아름다움은 각자 누군가에게 다른 것이다. 아름다움을 정형화하는 것은 폭력일 수도 있다.
저자 비렌 스와미는 추측컨대 (그러나 거의 확실하게) 말레이시아 출신이다. 영국의 앵글리아러스킨 대학 교수이지만 말레이시아의 한 대학의 연구소 소장이기도 하고, 본문에서도 말레이시아의 예를 상당히 많이 들고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말레이시아 출신 저자의 책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