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영, 《최소한의 교양》
전직 공무원 노인영 씨는 과학과 미술을 융합한 책 《최소한의 교양》의 ‘들어가는 말’에서 1950년대 영국의 소설가이자 물리학자였던 찰스 피스 스노의 일화를 들려준다. 강연에서 그는 청중들에게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라고 먼저 물은 후, 자신의 질문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은 일이 있습니까?”라는 수준의 과학적 질문이라고 말했다(나는 이에 해당하는 내용을 에드워드 O. 윌슨에서 맨 처음 접한 것 같다). 이 일화는 본문에서도 반복한다. 스노는, 그리고 노인영은 과학이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교양이라는 점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는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나의 생각과도 정확히 일치한다(나는 내 책의 작가 소개에 이 생각을 썼다). 노인영은 이런 생각으로 과학과 인문 교양의 하나인 미술을 연결했다. 대단히 의미 있는 아이디어이고, 시도에 큰 박수를 보내며 읽었다.
그림을 먼저 소개하고 있고, 그와 관련한 과학의 발달 과정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다만 과학의 내용을 먼저 생각한 게 거의 분명하고, 그것과 관련이 있는 그림을 찾은 것 같다. 비록 서술에서는 그 반대의 형식을 취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과학의 내용은 과학자들이 성취해 낸 과학의 수준을 거의 망라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 제목 ‘최소한의 교양’은 대체로 과학을 의미한다. 거기에 미술을 보탠 것이다.
그런데 읽다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과학과 미술의 연결이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억지 같은 연결도 상당히 많다.
그냥 펼쳐지는 대로 예를 들면, 힉스입자를 설명하는 장에는 고갱의 그림 <어머! 너 질투하니?>란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장의 제목을 그림의 제목을 빗대어 “넌 과학이 재미있니?”라고 지었기 때문이다. 과학과 미술의 관련성은 없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우주배경복사 발견과 그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는 장에서는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미술 기법도 특출하지 않은 기요맹의 <건초더미>를 소개하고 있다. 무슨 관련성이 있는 걸까? 그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로버트 우드로 윌슨과 아노 앨런 펜지어스의 발견이 복권을 맞은 것과 같았는데, 바로 기요맹이 복권에 당첨되면서 안정적으로 화가 생활을 했다는 점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 이런 식으로는 과학과 미술의 crosstalk은 어렵지 않을까? 다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연결도 없지는 않다. “발라의 닥스훈트”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연결시킨 것 등.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오류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생물학과 관련한 오류가 많다(내가 찾아낼 수 있는 게 그런 것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것 두 개만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오즈월드 에이버리의 실험에 관한 것이다. 그가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것을 밝힌 실험을 한 것은 제대로 설명했지만, 실험 방법은 엉터리 설명이다. 에이버리는 탄수화물, 지질, DNA, RNA, 단백질 등을 추출해서 넣은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물질들을 분해하는 물질을 넣어서 형질전환의 효과가 사라지는지를 확인했다. 즉, 저자가 얘기한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실험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에이버리는 A, G, C, T를 밝히지 않았다.)
또 한 가지는 세균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지 않다. 원생생물과 세균을 헷갈리고 있고(페스트균이 ‘단세포 원생생물’?), 박테리아와 세균이 서로 다른 것처럼 쓰고 있고, 박테리아가 양치류, 종자식물로 진화한 것으로 쓰고 있다(아마도 조류를 잘못 썼을 듯).
- 이렇게 되면, 그가 인용한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말이 무색해진다.
의도와 시도는 훌륭하다. 그리고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확히 이해한 것에 대해서만 쓰는 것도 필요하다. 내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