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민, 《지리로 다시 읽는 자본주의 세계사》
현재 세계의 체졔가 자본주의라는 것을 부인할 이는 거의 없을 듯하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가 힘을 잃은 이후에는 정말 그렇다.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것을 여러 가능한 사회, 경제 체제 중 하나가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체제라고 여기는 이도 있을 듯하다. 지금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 체제만을 경험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가 태동한 것은 약 600년 전이고, 실질적으로 전 세계를 석권한 것은 100년에서 200년 사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역사적인 것이다.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그 탄생과 발전, 그리고 위기를 파악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이동민 교수가 얘기하듯) 지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태동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간 체제이면서, 지리적 관계가 자본주의 성립과 발달의 모습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동민 교수의 《지리로 다시 읽는 자본주의 세계사》는 바로 그, 지리와 역사를 통해 자본주의가 어떻게 태동해서, 전 지구를 석권하고, 어떤 위기를 맞고 있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자본주의 발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거나, 혹은 특별한 역할을 했던 국가를 중심으로 보고 있으며, 그 역사적, 지리적 관계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각 국가가 서로 다른 지리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로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겪어 왔는데, 이를 포괄하는 문제의식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동민 교수는 그것을 ‘다중스케일’로 풀어내고 있다. 다중스케일이란, “지표 공간을 특정한 스테일이 아닌, 다양한 스케일의 상호 작용”으로 접근하는 지리적 인식론을 말한다. 즉, 특정 국가만의 지역적 스케일이 있고, 국가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스케일이 있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필수불가결하게 관계할 수 밖에 없는 전 세계적 스케일이 있다는 얘기다. 이 다양한 스케일이 서로 상호 작용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역사를 만들었다. 이 책이 자본주의의 역사를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니까 특정 국가를 각 장의 표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국가만을 두고서는 그 국가와 그 국가를 포함하는 그 시기, 그리고 그 이후 시기의 자본주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의미 있게 여기고 싶은 것은 3부다. ‘이상한 나라의 자본주의가 그려낸 새로운 세계지도’란 제목을 달고 있는 3부에서 ‘이상한 나라’란 바로 중국, 베트남, 그리고 대한민국을 지칭한다(물론 더 많은 나라를 포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를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중국, 천혜의 지리적 자원을 가지고 동남 아시아 국가 중 사다리 올라가기의 맨 앞에 서 있는 베트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방된 국가 중 유일하게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랐다고 평가받는 대한민국, 그러나 토건주의에 발목을 잡혀 위기를 겪었고, 여전히 갈림길에 서 있다. 이 국가들에 대한 얘기는 그 동안 논의되었던 ‘자본주의’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또한 그런 확장된 시각은 자본주의의 역사를 넘어서 현재를 이해하는 깊이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아쉬움도 있다.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점이다. 아니, 오직 착취의 대상으로서만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포함되어 있다. 물론 제한된 지면에 세계 각지의 국가들을 논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중스케일의 시각에서 좀 배우고 싶은 바람이다. 그냥 투정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