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혜심, 《소비의 역사》
설혜심 교수가 17,8세기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소비’의 역사에 대한 탐구는 전방위적이다. ‘GOODS, 욕망하다’에서는 주로 옷, 도자기, 비누에 대해, ‘SALES, 유혹하다’에서는 특허약(이른바 만병통치약), 재봉틀, 화장품 아줌마, 트레이드 카드에 대해, ‘CONSUMER, 소비하다’에서는 계(契)모임, 수집 행위, 의학서, 병적 소비욕, 성형소비 등에 대해, ‘MARKET, 확장하다’에서는 온천, 수정궁 박람회, 카탈로그 쇼핑, 쇼핑몰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BOYCOTT, 거부하다’에서는 주로 소비자 운동에 대해 다룬다. ‘소비’라는 주제에 대해 분야별로 다룬다고 하면 더 다양하고, 더 깊숙하게 다룰 수 있겠지만, 이 주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책의 취지를 생각하면 이보다 다양하게 다룰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주로 무엇을 다루는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거의 다 얘기했는데, 사실 그 품목이나 상황을 제목만 봤을 때는 이것들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없다. 그냥 근대로부터 현대까지의 각양각색의 소비 행태를 이것저것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기본적으로 소비 문화에 대한 반성적 인식이다. 필요에 의해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욕망에 의해 소비하게 되고,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의 객체가 되어 조종당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서구 중심으로 이뤄져온 소비 문화와 남성 중심으로 짜여졌던 소비에 대한 인식에 대해 비판한다.
이를테면 비누에 관한 내용에서는 비누가 ‘백색 신화를 전파한 최초의 식민주의 상품’이라는 점을 중점적으로 파고든다. 청결에 관해서라면 그다지 평가받지 못했던 서구(즉, 유럽)가 19세기 들어서도 한참 지나서야 청결에 관한 의식이 깼다. 그런데 그런 뒤늦은 인식 전환은 그들이 정복해야 할 아프리카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작용했고, 그것을 뒷받침한 것이 바로 ‘비누’였다는 것이다. 또한 트레이드 카드를 보더라도 서구가 그들의 제외한 다른 대륙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하고, 얼마나 편견을 갖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튀르프풍의 의상의 유행했던 이유나, 노예제 폐지와 관련한 설탕거부운동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것인지도 폭로하고 있다.
여성에 대해서는 더욱 진지하고, 깊숙하다. 여성들이 소비의 주체가 되지 못했던 시절에 대한 비판도 그렇지만, 점점 소비의 주체가 되어가던 시대에도 여성에 대한 편견은 각종 소비 상품과 소비 문화에서 드러났다는 걸 보여준다. 신부의 드레스와 관련한 사치 논쟁도 그렇고, 18세기 프랑스에서 앙투아네트의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풀어낸 생산자로서 등장한 여성들에 대한 멸시, 에이본 레이드, 즉 우리 식으로는 화장품 아줌마가 어떻게 여성성을 소비했는지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소비의 상품과 문화를 다양하게 풀어낸 이 책은, 말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것들이 어떻게 익숙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살펴보는 게 절대 폄훼해서는 안 되는, 즉 진지하게 탐구해야 할 분야라는 것도 보여준다. 완전히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의 행위가 어떤 역사적 기원을 가지며, 그리고 그 의미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아는 것은, 지금 우리가 소비하는 것을 반성적으로 파악하도록 하며, (비록 소비하는 것을 멈추지는 못하더라도) 보다 더 바른(그 의미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소비를 고민하도록 할 것이다.
*인식하지 못하고 읽었는데, 설혜심 교수는 《그랜드 투어》로 이미 만났었다. 역시!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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