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웨슐러,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올리버 색스가 죽은 이후로도, 그의 책, 그에 관한 책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죽음 기사를 읽고, 더 이상 그의 책을 읽을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반가운 일이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뉴욕타임즈>지에 기고했던 글을 모은 《고맙습니다》는 그의 삶에 대한 태도와 죽음을 앞둔 경건함으로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주었고, 그의 자서전 《온 더 무브》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그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이 책을 읽으면서가 올리버 색스가 동성애자란 걸 알았다). 《의식의 강》은 그의 보편적인 과학에 대한 열정, 열망을 읽을 수 있었다. 죽기 전까지도 품었던.
동성애자였던 올리버 색스가 만년에 사랑했던 빌 헤이스의 《인섬니악 시티》에도 올리버 색스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고.- 놀라긴 했다. 역시 내가 좋아했던 책들, 《해부학자》, 《5리터》, 《불면증과의 동침》의 작가가 그렇게 올리버 색스와 연결되다니. 그리고 이제 로런스 웨슐러의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이다.
올리버 색스 평전이라고 했지만, 색스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은 아니다. 올리버 색스가 《편두통》과 《깨어남》을 쓴 이후(그러니까 1970년대 후반 얘기다) 작가 로런스 웨슐러가 그의 평전을 쓰기 위해서 만난 이후의 얘기이며, 책의 대부분의 그 당시의 얘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의 섹슈얼리티, 그의 고뇌, 그의 마약과 음식에 대한 탐닉, 그의 불운, 그의 성공 등등. 올리버 색스와의 대화,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의 동료들과의 대화, 로런스 웨슐러의 기록 등등을 이어붙이고 있는 형식이다. 물론 올리버 색스의 육성을 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 시기는 올리버 색스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으로,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이른바 ‘다리 책’를 쓰면서 글막힘으로 고생하던 시기이기도 했다(그래서 그의 연표를 보면 《깨어남》 이후 한참 지나서야 다음 책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이 등장한다). 직업적으로도 매우 불안하여 병원에서 해고되기도 하고, 어느 정도의 찬사와 함께 비난도 받았던 시기다. 작가는 그 시기를 올리버 색스와 함께 하면서 많은 자료를 모았다.
그러나 로런스 웨슐러의 작업은 출판되지 못한다. 올리버 색스가 중단을 요청했고, 중단 요청의 이유로 가장 큰 것은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공개하기를 꺼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둘의 인연을 계속 되었으며, 죽음을 앞두고, ‘명령’에 의해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어쩌면 평전으로서는 매우 불완전한 책일 수 밖에 없다. 그의 삶의 전 시기를 모두 다루고 있지도 않으며, 그에 관해서 저자의 관점에서 서술한다기보다는 여러 자료들을 모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자신의 일기 중에서 올리버 색스와 관련된 부분을 발췌한 것 같은 부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올리버 색스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 시기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살펴보는 게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직 명성을 확고히 하기 전, 고민도 많고, 인간적 취약점을 들어내기도 하던 시절의 고뇌와 태도가, 비록 그를 완벽한 인간으로 여기게 하는 데 는 장애가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라는 말처럼, 올리버 색스를 보다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물학자 입장에서 신경학을 다루었던 올리버 색스였다. 그는 통상적인(이는 대체로 ‘정량적’을 의미한다) 의학, 과학 논문이나 저술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통한 환자에 대한 기술을 통해 과학과 의학에 접근했다. 탁월한 글솜씨를 가졌지만, 한동안 글막힘에 고생하며, 10년 동안이나 자신에 대한 책 한 권을 마치지 못하기도 했다. 동성애자였으며, 젊은 시절에는 마약에 탐닉하기도 했으며, 먹을 것을 앞에 두고 흡입해버리는 고약한 버릇도 있었으며, 사람의 얼굴을 잘 구분 못하는 약점까지 지닌 이였다. 그러나 그는 환자의 마음까지 들여다보기를 원했던 의사였으며, 그 마음을 그대로 글로 옮긴 작가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