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하워드,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전개 양상, 결과와 영향에 대해 가장 압축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아마도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이 책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불행히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마냥 좌충우돌이었다).
마이클 하워드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을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독일의 야망과 영국의 그에 대한 대응이라고 보고 있다. 독일은 단순한 강국이 아니라 세계 최대 강국이 되기를 염원했고, 사라예보의 총성이 울리기 전부터 이미 프랑스와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영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만이 변수였다. 하지만 영국 역시 세계 최강국이라는 지위를 내놓을 생각이 없었고, 유럽 본토에서의 전쟁에 대한 개입은 명분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지지도 얻었다.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른 책들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각국은 전쟁에 돌입하면서 그 전쟁이 그해(1914년)에 끝날 걸로 예상하고, 또 그러기를 바랐다(오직 영국의 키치너만이 전쟁이 오래 끌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전쟁은 철조망과 참호전으로 상징되듯 지지부진하게 오래 끌었고, 그와 함께 막대한 인명피해를 낳았다. 마이클 하워드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전쟁의 무기는 현대적이었지만, 그에 따르는 통신 기술은 미비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전쟁은 전면적 공격전의 양상이 띠었다가 금방 방어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알게 된, 가장 놀라운 것은 그런 전쟁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국민들의 전쟁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처음에야 전쟁에 관한 낭만적 생각으로 그랬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도 그랬다는 것은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기도 하다. 마이클 하워드는 전쟁에서 ‘민족적 열정’이라는 요소를 그 이유로 들고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국민 국가 건설과 그에 따르는 교육의 확대는 애국주의를 낳았고, 그 애국주의는 전쟁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던 것이다. 또한 전쟁 중에 영국 등에서는 오히려 생활 수준이 그다지 나빠지지 않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정말 그런지 비판적으로 따져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이다.
전쟁은 독일의 잠수함 작전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참전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버티지 못한 독일의 패배로 끝이 나고 말았다. 이 지점에서 역시 눈여겨봐야할 대목이,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고 끝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이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오로지 휴전 조건을 두고 연합국에 기만당했고, 제국의 적들, 즉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당시의 곤경을 이용한 사회민주주의와 유대인들한테 ‘등 뒤에서 찔렸기’ 때문에 마땅히 자기들 차지인 승리를 빼앗겼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과도한 배상 조건(결국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던)은 결국 독일의 경제난이 오로지 그 배상 요구 탓으로 돌릴 수 있는 핑계를 만들었다. 그런 배경은 결국은 히틀러와 나치 등장의 토양이 되었고, 새로운 전쟁을 예고하고 말았다.
마이틀 하워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개와 성격을 아주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요약적이지 않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읽어보면 안다. 다시 말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이 책부터 읽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