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캔델, 《마음의 오류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에릭 캔델의 책을 꽤 읽었다. 그의 자서전인 《기억을 찾아서》, 개인적으로 명저 중 하나로 꼽는 《통찰의 시대》, 자신의 기억에 대한 연구를 종합한 《기억의 비밀》, 뇌과학과 미술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모두 훌륭한 저작이었다고 ‘기억’한다.
《마음의 오류들》에서는 주로 신경 질환과 정신 질환의 생물학적 근거를 탐구하고 있다. 특히 뇌의 해부학적 손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신경 질환과는 달리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던 정신 질환에 관한 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정신 질환 역시 뇌의 이상에 의한 질병으로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는 치료, 혹은 증상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가 다루고 있는 뇌 질환들은 특히 현대에 들어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이다. 자폐 스펙트럼,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 조현병, 치매, 파킨슨병과 헌팅턴병과 같은 운동 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중독, 젠더 정체성(이것을 질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설명하는 방식은 거의 비슷하다. 그 질병들의 역사적 흐름을 조망하고, 19세기 말 이래 지금까지 밝혀진 병의 원인을 설명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치료하거나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그 각각의 것에 집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질환들을 연구하는 현대적 접근법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우선은 이 질환들이 유전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유전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질환들이 본질적으로 생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그는 조현병에 대해서 대화 등을 통한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 역시 생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음은 뇌 영상법의 발전을 들고 있다. CT와 MRI에서 시작된 뇌 영상 촬영법의 발전은 fMRI, PET와 같이 뇌 활동의 자세한 면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고, 이를 통해 뇌과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당연히) 간접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뇌질환이나 어떤 상황에 대한 뇌의 반응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동물 모델이다. 뇌 질환에 관한 동물 모델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동물 모델은 이용한 뇌 장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동물을 통해서 인간의 뇌를 이해하는 지름길을 내왔다. 또한 유전학의 발달과 함께 뇌 질환에 관한 모델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역시 뇌에 관한 이해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에릭 캔델은 이 세 가지의 접근법을 통해서 앞에 언급한 뇌 질환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매우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뇌 질환에 대한 설명이 다소 요약적이라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앞의 저작들에 비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쓴 뇌과학, 또는 뇌 질환에 관한 책들과 그다지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딱 한 장이 그렇지 않다. 바로 ‘뇌 질환과 예술’에 관한 6장이 그렇다. 다른 장들과는 다소 이질적인 장인데도, 이런 내용은 에릭 캔델 말고는 누가 쓸 수 있을까 싶다. 뇌 질환을 가진 이들의 예술과 초현실주의 예술을 비교하면서 창의성의 원천이 어디서 오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통찰의 시대》나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에서의 면모가 드러나고 있다.
다 읽고 뇌 질환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한다고 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그것은 신경 질환 뿐만 아니라 정신 질환까지도 도덕적인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생물학적인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젠더의 문제까지 포함하여). 또한 그것은 치료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얘기이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과학자들에 대해 경의를 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희망의 메시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