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문장들에 대한 오해, 그러나...

브로노 프라이젠되르퍼, 《세상을 바꾼 문장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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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난 후 독후감을 쓰면서 아쉬운 점이 있으면 보통 글의 끝에다 써왔다. 그걸 책에 대한 예의 같은 거라 여겼다. 그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수고를 대충은 알기에, 아쉬운 점을 지적하면서도 그게 비난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고심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아쉬운 점을 먼저 얘기해야겠다. 책을 읽는 데 장애가 될 정도의 아쉬움이니 말이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번역과 편집이 왜 이럴까 싶다. 아마 둘 다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어려운 본문 내용인데 책읽기를 더욱 난해하기 만들고 있다. 책 전반에 걸쳐 그런데, 그래도 내가 확실하게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을 보면 이렇다. 다윈의 ‘적자생존’에 대한 장에서다.


“약 300만 살에 상당히 일찍 죽었던 최초의 인간 루시” - 아마도, 아니 분명히 ‘약 300만 년 전’일 것이다.

“본 문구에 대한 반인종주의차별주의적 비평” - 사실은 네모 박스 안에 ?표가 있다.

“전지전능하고 유일무이한 창조주가 창조해낸 게 아니라 삶이 발달해가고 생명체가 적응해나가는 과정 중에” - 삶이 발달?

“헤켈이 하지 않았던 최초의 독일어 번역 제목을 보면” - 번역을 하지 않았는데 제목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유전적 유전질에 대한 복제 메커니즘의 가능성” - 종종 ‘유전질’이라고 번역해 놓은 것이 있는데, 도대체 유전질은 무엇을 번역한 말일까? 그래서 idioplasm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긴 하다. 그래도 ‘유전질’. 전혀 쓰이지 않는 말이다.


이 말고도 전혀 맥락상 이어지지 않는 문구가 정말 많다. 번역을 이렇게 했더라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는 편집자였다면 용납하지 않았을 것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아쉬움을 먼저 토로하는 것은 책 내용이 꽤 괜찮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철학자나 사회학자 등의 생각을 하나의 문장으로 대표해서 기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경우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의미와는 다른 것이라면?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11개의 문장을 골랐다(그가 제외해야 했던 문장들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그것들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이런 것들이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적어도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토머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장 자크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 (실은 그가 하지 않은 말이란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임마누엘 칸트의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취미가 있다.” (난 들어보지 못한 말. 아니 많이 듣지만 그게 칸트가 한 말인지 몰랐던 말. 아니 그게 철학적인 말이라 생각해보지 못한 말이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인간은 그가 먹는 것이다.” (이건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 관한 얘기할 때 하는 말인데...)

카를 마르크스의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 (역시 그가 쓴 말이 아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신은 죽었다.” (놀랄 만한 일이지만 역시 그가 맨처음, 유일하게 한 말이 아니란다.)


이 문장들은 정말 유명하다. 이렇게 모아놓으니 이것 자체로도 어디서 써먹기 좋은 자료가 될 듯도 싶을 정도다. 그런데 중간에 잠깐씩 언급하기도 했지만 이 문장들 가운데는 이들이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도 있고, 그냥 한두 차례 지나가듯이 언급한 어구도 있다(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또 우리가 지금 받아들이고 있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쓴 말도 있고(소크라테스나 베이컨의 경우), 보다 고차원적인 의미를 지닌 것도 있다(칸트의 것?).


본문은 무척 어렵다. 여러 철학자들의 언급을 인용하고 있고, 그렇게 인용하는 문장은 내용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복잡하게 만든다. 아마 애초의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그리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고 받아들인다. 좀더 쉽게 풀어주었으면 하는 것은 대한민국 독자의 바람일 터이다. 그쪽(독일)의 독자들은 이 정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좀 약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이 화려한 지적 논쟁이 일단을 엿보아서 만족스러울 뻔도 했다.


사실 그보다는 각 장 끝의 인물들에 대한 글 서너 쪽이 더 편하고, 도움이 됐다. 왜 그들이 그런 문장을 쓸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한 힌트도 그들의 인생에서 엿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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