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김용규,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

by ENA
KakaoTalk_20250521_221847256.jpg


숲을 ‘거닐어본’ 게 참 오래되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거의 숲길을 걷지만, 가야 할 곳이 정해진 나는 바쁘다. 잠깐 멈춰 새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새도 없다. 단지 그 소담한 길을 걸어 밥벌이를 하기 위해 가는 길이 조금 마음이 편할 뿐이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숲은, 그게 아무리 작더라도 숲이다.


‘숲의 철학자’ 김용규는 이 책에서 숲의 말을 듣자 한다. 숲의 말은 침묵이지만, 그 침묵의 소리를 듣자 한다. 숲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숲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움직임과 살아감을 느껴보자고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삶이 조금은 더 여유롭고, 조금 더 평화롭고, 조금 더 충만해질 거라고 한다. 경쟁에 내몰린 우리들에게, 삶의 질곡에서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숲은 경쟁이 전부가 아니며, 삶의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라며, 서로 어울려 살라 하며, 고난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다. 곁을 생각하자 한다.


김용규가 전하는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의미가 다를 것이다. 숲의 이야기가 삶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글에서 어느 부분에 더 많이 공감할 지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 동의할 수 있는 건 있지 않을까 싶다. 바로 잠깐이라도 숲속 나무 곁에 앉아 숲의 공기를 마셔보고 싶다는 것. 그것만이라도 하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생각. 어쩌면 그런 나와 숲의 작은 교류가 숲의 이야기를 듣는 것의 시작일 것이다.


김용규의 말은 소리 높지 않다. 숲에서 소리쳐 봤자다. 숲은 그 높은 소리를 다 안아 버릴 것이다. 높지 않은, 그렇지만 깊은 소리는 숲속에 오래 남는다. 김용규의 말이 오래 남을 수 있는 이유다.


그래도 로고스적인 인간으로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식물이 고난을 이겨내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여름의 치열함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색, 향, 모양, 시간. 특히 산딸나무, 산수국 같은 식물들이 모양을 이용해서 자신을 드러내 생존하고 자손을 남기는 방식은 신기하기 그지없다. 숲에서 만나고 싶어진다. 산딸나무 얘기만 전하면 이렇다.


“산딸나무의 특별한 성형은 꽃잎에서 일어났습니다. 네 장으로 구성된 긴 타원형의 우윳빛 꽃잎. (중략) 산딸나무의 이 꽃잎들은 원래 꽃잎이 아니라 꽃싸개(꽃받침잎)였다는 점 때문입니다. 꽃을 보호하던 꽃싸개를 스스로 흰빛 꽃잎처럼 변형한 것입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우윳빛 꽃잎 위에 잎맥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꽃잎은 처음부터 흰색도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연두색을 띠고 광합성을 담당하다가, 꽃이 피기 직전이 되어야 비로소 흰빛으로 변하여 꽃의 위치를 환히 드러냅니다.”


WLI71_3_650.jpg?type=w580



이렇게 식물은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살길을 찾아간다. 사실은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권리와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숲에만 기댈 수는 없지만, 숲에서 지혜를 빌려 올 수는 있다. 조금씩 조금씩 숲 깊숙이 걸어가듯이, 그렇게 들어간 숲에서 큰 숨을 쉬고, 당당하게 숲 밖으로 걸어 나오듯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간을 배운다, 안나 카레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