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배운다,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by ENA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각 권마다 내용을 조금 요약하고 감상을 덧붙였다. 이제 전체에 대한 독후감을 쓸 차례다.


기본적으로 가정 이야기며, 사랑 이야기며,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스스로 대단한 단어를 써가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이처럼 장대하게 써갈 수 있었던 것이 톨스토이였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로 삶과 역사, 정신을 포괄해낸, 즉 인생의 총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가 바로 톨스토이였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차이점을 생각해보는데, 《안나 카레니나》에서 자신의 철학에 관해서 노골적으로, 많이 쓰지 않는다. 거의 에필로그 격인 제8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대신 한두 문장이 독자들의 뇌리에 박힌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보다 얕은 느낌이 들지만, 잘 읽힌다. 얕다는 건 표면적인 느낌이 뿐이긴 하다.


소설에서는 갈등이 연속된다. 가장 주된 갈등은 사랑하는 사이인 안나와 브론스키, 레빈과 키티 사이의 갈등이겠지만(사랑은 별 수 없이 갈등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인물들 사이에서도 갈등은 끊임없이 벌어진다. 그 갈등은 해결되는 듯싶다가 다른 갈등으로 이어진다. 마음 속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인 경우가 아닌 경우, 그러니까 그저 갈등을 묻어두기만 한 경우 결국은 폭발하고 만다. 안나의 비극적 죽음은 그 결론이다.


흔히 레빈을 톨스토이의 대역이라고 한다. 톨스토이의 정신에 관해서 가장 많이 드러낸 인물이라서 그렇다. 레빈의 행동과 생각을 보면 배워가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논쟁에서도 이기지 못하고, 사교계에서도 그 절차 같은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톨스토이가 레빈을 그런 인물로 묘사한 것은, 그가 러시아 사회의 잘 이해되지 않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자신을 따르라는 게 아니라, 이러 문제, 저런 문제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그러니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해설>을 보면, 톨스토이는 자신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쓸모없는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했다. 또한 “모든 것을 다 써넣었고 아무것도 달리 쓸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라고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예술작품으로서 완전 무결하다”라고 했다고 한다. 토마스 만은 “전 세계 문학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로 일컬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무엇이 이 작품을 그렇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독자로서는 잘 알 수는 없다. 다만 어렴풋이 왜 이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지 만큼은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다.


소설가 김영하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한 권의 책으로 이 작품을 골랐다. 먼저 언제 구조될지 모르니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이유를 대기는 했지만, 곧이어 심리 묘사가 엄청 세심해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이 다 나타나고, 아주 세세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읽고 나니 공감할 수 있겠다.


인간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소설일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바로 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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