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3, 안나의 비극과 레빈의 깨달음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3》

by ENA
L_102430.jpg


《안나 카레니나》 3권에서 제6부는 이제 이루어진, 그러나 서로 다른 형식으로 이루어진 두 쌍의 생활을 보여준다. 브론스키와 안나는 분명 불법적이다. 그들은 그들의 관계를 부부라고 여기지만,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들의 영지에 꾸리는 대규모의 자선 사업은 어쩌면 그런 시선을 의식한 자격지심 같은 느낌이 든다.


반면 레빈과 키닌의 관계는 합법적이다. 레빈은 자신의 농장에 모여든 키틴 집안사람들과 친구들이 불편하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갈등 요소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으로 묶인 관계일 뿐만 아니라 제도로도 묶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 제도를 부수기 위해서는 더 심각한 갈등이 필요한 것이다. 제도는 감정보다 더 끈질기다.


제6부에서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귀족단장 선출에 관해서 길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그저 타성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에 불과한, 이젠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제도”를 부여잡고 패거리를 짓는 귀족들의 행태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레빈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제7부는 안나의 비극적인 자살로 끝을 맺는다. 제7부의 내용은 그런 결론으로 치닫기 위한 빌드-업이나 다름없다. 톨스토이는 그런 갈등으로 치닫는 상황을 묘사하기 전에 소설의 맨 앞에 썼던 가정의 문장과 비슷한 문장을 쓰고 있다.


“가정생활에서 무엇인가를 꾀하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에 완전한 분열이나 혹은 사랑의 일치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부부관계가 애매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에는 어떠한 계획도 실행될 수 없는 것이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비극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들의 불꽃같은 사랑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외면하고 두고 온 것들이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완전히 돌아서는 관계도 될 수 없었다. 그들은 무엇을 꾀할 수는 있었으나 그것을 실행해 옮기지는 못한다. 모스크바에서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가는 일마저도. 그런 관계의 위기는 안나의 정신적 위기로, 그리고 자살로 이어진다.


제8부는, 말하자면 에필로그다. 다소 현학적이다. 소설을 쓰면서 일어난 톨스토이의 정신적 변화를 쓰고 있는 듯 여겨지기도 한다. 세르비아 독립전쟁에 나서는 의용군에 대한 생각을 쓰고 있고, 농부의 말을 듣고 자신에 대해 성찰하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레빈의 생각의 흐름을 집요하게 서술하고 있다. 레빈이 톨스토이 자신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여기까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안나 카레니나 2,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