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와이즈 바우어, 《과학의 첫 문장》
오해를 많이 불러일으키는 (우리말)제목. 정말 ‘과학(책)’의 첫 문장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다. 물론 대상이 되는 과학책에 쓰인 문구를 인용하면서 시작은 하지만, 그게 각 장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책에 대해서 실망할 이유는 없다. 소설도 아니고(김정선의 《소설의 첫 문장》에서 본 것처럼) 과학책에서 첫 문장이 중요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과학책이, 혹은 과학이 무엇을 밝혀냈는지, 아니 더 중요하게는 어떤 과정과 방법을 통해서 거기에 도달했는지가 중요한 것이니.
이 책은 과학 저술을 중심으로 과학의 발달사를 따라가고 있다. 최근에 나왔던 브라이언 클레그의 《책을 쓰는 과학자들》과 거의 비슷한 형식이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3744824074). 브라이언 클레그의 책이 어떤 흐름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수잔 와이즈 바우어는 과학 저술을 통해 각 분야에서 과학이 수행되는 양상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그래서 수잔 와이즈 바우어는 어떤 굵직한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면, 브라이언 클레그는 선을 보여준다.
방금 얘기했지만, 이 책은 과학의 성과보다는 과학의 방법, 수행되는 과정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과학을 생각해왔는지를 조명해보기 위해 이 책들을 골랐다.”). 그래서 자주 언급되는 과학자(과학저술가?)가 바로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2부의 첫머리에 《신논리학》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로부터 ‘과학적 방법론이 탄생’되었다고 보고 있고, 이후의 과학자들은 베이컨의 방법론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는지, 혹은 그 방법론을 얼마나 변형, 혹은 발전시켰는지의 여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는 ‘연역법 vs. 귀납법’과 같은 과학적 방법론의 낡은 대립 구도라기보다는 현상에 대한 관찰과 실험에 기초해서 가설, 내지는 이론을 만들어나갔는지의 여부라고 봐야 한다.
브라이언 클레그의 《책을 쓰는 과학자들》에서도 언급하고 또 중요하기 지적했지만, 과학 저술의 성격은 현대에 와서 달라졌다. 이른바 메타과학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과거의 과학 저술은 자신이 ‘발견’한 것을 알리는 목적이지만, 지금의 과학 저술은 자신도 포함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발견할 것을 ‘종합’하거나 이해하기 쉬운 발로 ‘번역’해서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중들은 과학을 전혀 이해할 수 없으리만큼 현대의 과학은 너무 전문화되고, 복잡화되고, 또 내재화되어 있다.
사실 그래서 과학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과학의 내용이든 방법이든 과학이 가장 중요한 교양이 된 지금(난 그렇게 믿는다),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독하게 전문화되고, 복잡해지고, 내재화된 과학을 이해할 수 있게 보여주는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건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자신이 하는 과학이 매우 좁은 범위의 것이라는 것은 과학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 첨예한, 바늘 끝에 서 있는 과학자의 활동이 전체 사회에서, 혹은 과학의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이해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은 과학책을 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