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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05. 2020

'나'는 누구인가?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일체의 기억을 잃어버린 사내그는 탐정 사무소에서 8년을 일하고탐정 사무소가 문을 닫자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간신히 입수한 사진 한 장과 부고(訃告)를 단서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실타래처럼 사람들이 연결되고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누구인지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조금씩 드러난다뿌연 안개 속을 허우적대는 것만 같던 자신의 과거에 대한 추적은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결국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 퍼즐이 맞춰진다그러나 그 기억은 정확한 것일까작가는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는다(마지막 기억 이후 십 년의 기억은소설에서도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기억은 한 인간에게 있어 정체성의 본질이다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자신의 사회적 의미가치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어떠한 관계도 없다그래서 기억을 잃어버린 이가 기억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는 문학에서 아주 자주 등장한다기억이 편집되는 것이라는 식의 전개도 흔하다그만큼 기억은 개인에게사회에게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이며그것을 회복하는 이야기는 과거를 향하지만동시에 미래를 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사내(기 롤랑이라 불리기도 하고페드로라 불리기도 하는)가 과거를 악착 같이 추적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그러나 그의 추적이 완벽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그건 사람의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측면의 이야기가 아니다기억과 관련된 과거는 분명 현재와 연결되지만그 연결은 불완전하다어떤 것은 끈적거릴 정도로 밀착되어 있지만또 어떤 것은 도무지 그 관련성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기억은 선별적이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과거를 짜맞춰가는기억을 잃어버린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결국은 현재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관통해온 세대인 자신의 현대는 과거를 잃어버림으로써 가능했다고그렇게 끈질기게 구성하려 하더라도 끝내 구성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음을그래서 현대가 가능해졌다고과거의 소멸을 통해 현대가 가능할 수 있음을그는 보여준다그건 사실어느 세대에나 해당한다모두 자신들의 세대가 불행하다 여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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