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 《근대 괴물 사기극》
제목을 보고는 도통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가지 않거나, 혹은 완전 역설적인 내용을 읽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이 책만큼은 제목이 내용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우선, ‘근대’. 고대나 중세 시대, 혹은 현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때론 고대, 중세 때부터 이어져 오던 전통을 언급하거나 현대에 와서 해결된 경우도 있지만, 핵심은 근대에 벌어진 이야기다.
그럼 여기서 근대는 어느 시대를 의미할까? (사람마다 시대 구분은 달라지니까) 일반 독자들은 다소 의아할 테지만 근대의 기점은 칼 폰 린네(여기선 린나이우스라고 쓰고 있다. 린나이우스는 귀족 작위를 받은 후 린네라고 쓴다)가 《자연의 체계》를 쓴 이후로 잡고 있다.
책이 출간되기 몇 달 전(1735년) 린네는 함부르크에서 히드라가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밝히며 퇴치했는데, 《자연의 체계》에서 ‘모순적인 동물’이라는 목록을 두면서 ‘진짜’ 동물과 ‘가짜’ 동물을 구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이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적어도 저자 이산화는 그렇게 보고 있고, 적어도 괴물과 관련한 이야기에서 린네(린나이우스)는 근대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리고 ‘괴물’. 그렇다. 이 책은 괴물에 관한 책이다.
괴물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괴물이란 무조건 무서운 존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자가 생각하고 쓰고 있는 괴물이라는 존재는, 이상하거나, 엄청나게 크거나, 기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거나, 상상으로만 존재했었거나, 신기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독특함으로 돈벌이가 되거나 하는, 그런 존재다.
그러니까 어떻게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게 늘상 보지 않던, 그런 존재라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그런 존재에 관한 얘기다.
마지막. ‘사기극’. 맞다. 여기에 쓴 모든 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밝혀졌다).
다만 사기라는 데 대해서는 조금의 해명은 필요하다. 많은 경우 진짜 사기, 즉 의도가 개입된 거짓말이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과한 의욕이 문제가 되었거나, 순진했거나, 혹은 무지했거나 해서 벌어진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의도된 거짓말이 아닌 경우에도 세상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곤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은 나의 감상은 어떤가?
먼저 이걸 우리나라 저자가 썼다고?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의 저자를 낮춰 보는 게 아니다. 우리도 이만한 수준의 책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이라고 해야 옳다. 꼼꼼한 자료 수집과 치밀한 논리가 책 전체를 관통한다. 끝까지 느슨해지지 않고, 팽팽하게 괴물을 퇴치해간 과학과 이성의 힘에 대해 쓰고 있고, 또 다시 괴물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쓰고 있다.
이런 책 한 권을 다 읽고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런 책을 두고 아쉬움 운운하는 것은 불경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아주 잘 소개한, 그런 이야기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불경’ 운운했을 리 없다.
이 책을 더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책에는 ‘생각’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왜 괴물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고 터무니없이 믿게 되고, 또 열광하기도 하는지에 대해 함께 생각한다(호모 사피엔스라는 학명이 어울리지 않는 면이다). 또 그런 괴물을 퇴치해가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작은 희망도 이야기한다(이런 건 그래도 호모 사피엔스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통해 괴물에 대한 관심은 단지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고,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가짜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린네가 ‘가짜’ 동물과 ‘진짜’ 동물을 가려내는 첫 발자국을 뗀 이래, 괴물을 솎아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는데, 이제는 ‘가짜’ 이야기, ‘가짜’ 뉴스를 진짜와 가려내야 하는 훨씬 어려운 미션을 마주하게 되었다. 상식적인 이성만 가지고 있다면 가짜 동물을 가려내는 것쯤이야, 하는 순간 우리는 가짜를 진짜로 감쪽같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수단에 노출된 것이다.
괴물은 퇴치되지 않았다.
더 혼란스럽고 무서운 세상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