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G. 슈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60개의 역설을 다룬다.
꽤 머리가 아픈 책이다.
맞는 것 같은데 아니라고 하고, 아닌 것 같은데 맞다고 한다. 혹은 어느 쪽도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사실 그런 게 아이러니(irony), 역설이다.
이미 좀 알고 있는 것도 있고(과학저술가 곽재식 씨가 쓴 《곽재식의 역설 사전》에서 배운 게 많다), 그런데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있다.
대체로 수학이 많이 들어가면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무한 소수는 잘 알겠지만, ‘톰슨의 램프’와 같은 것이나 ‘난수의 역설’(“무작위는 무작위가 아니다”) 같은 것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말장난 아닌가 싶어 이런 걸 굳이 역설이라고까지 해야 하나 싶은 것도 있다. 버트란트 러셀의 것으로 유명한 ‘이발사의 역설’은 그나마 나은데, ‘알려진 기지의 것과 알려진 미지의 것’, 즉 ‘피치의 역설’ 같은 것들은 (철학자들은 무척 심각하게 논의한 모양이지만) 말장난 같은 느낌이 물씬 든다. 그래도 어쨌든 논리의 문제이긴 하다.
그런데 역시 말장난 같은 것이긴 하지만 ‘서문의 역설’을 읽으면서도 뜨끔! 하기도 했다. 많은 저자들이 책을 쓰면서 서문에 누구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최대한 오류가 없도록 했지만, 오류가 있으면 그것은 다 본인의 책임이라고 쓴다(나도 그랬다). 말하자면 상투적인 것인데(그래서 본심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조지 슈피로는 이게 많은 사람들이 역설이라고 지적해 왔던 것이라고 한다. 책 내용에 오류가 (거의) 없도록 해놓고는 그게 있으면... 이렇게 하는 것이 역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지 슈피로는 (다행히도) 이는 “역설적이지 않으며 전적으로 합리적”이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다행이다.... 그런데 왜 이 내용이 ‘역설’을 다룬 책에 들어있지?
사실 역설은 역시 말장난에서 시작한 경우가 적지 않다(이를테면 ‘제논의 역설’,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와 같은 경우). 그런데 그런 말장난 비슷한 문제의 제기와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는 ‘헛소리’를 넘어선 어떤 것이 있다. 이 책에서와 같은 수학에서나 쓰는 논리 기호를 쓰지 않더라도 논리적 해명이나 반박이 필요한 것이 역설에 대한 이해다. 그리고 그런 역설을 반박하거나 해명하면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곤혹스러운 질문을 해결하고자 애쓰는 데는 적지 않은 에너지가 쓰인다(나는 이 책을 읽는 데 그랬다). 사실 그게 역설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질문을 쉽게 넘기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여기의 역설들은 그런 가치를 지닌 것이라 생각한다.
(사족) 읽으면서 계속 걸렸던 것이 하나 있다. 꼭 ‘1가지’라고 쓰고 있다. ‘일 가지’라고 ‘한 가지’라고 읽는 부분에서도 그렇다. 편집 방침인가?
(또 한 가지 사족) 앞에 곽재식 씨의 책 얘기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곽재식의 역설 사전》이 더 재미있었다. 곽재식의 책은 이야기이고, 이 책은 논리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