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 윌리엄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1884년 첫 번째 분책(《A부터 Ant까지》)이 나오고, 1888년 첫째 권(《A와 B》이 나온 이래 70년 만에 1928년 12권으로 완성된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지금까지도 가장 권위가 있는 영어사전으로 꼽힌다. 단어의 정의뿐 아니라 ‘역사적 원칙’에 의거해 그 용례를 꼼꼼히 찾아 수록한 첫 사전이다. 이 사전을 소재한 한 책으로는 사이먼 윈체스터의 논픽션 《영어의 탄생》(https://blog.naver.com/kwansooko/222064133775)이 있고, 역시 사이먼 윈체스커가 쓴 《교수와 광인》(https://blog.naver.com/kwansooko/221973424184) 역시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배경이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책이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둘러싸고 실제 있었던 일을 기록한 논픽션이라면 핍 윌리엄스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은 실제와 픽션을 엮어놓은 소설이다.
사전 편집자 중 한 사람의 딸 에즈미 니콜이 아주 어린 시절 스크립토리엄이라 불린 사전 편집실 책상 아래서 노닐면서 누군가 잃어버리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버린 단어 쪽지를 모으면서 소설은 시작된다(첫 단어는 ‘Bondmaid, 여자 노예’였다). 소녀는 영어사전이 아주 느린 속도로 전진해나가는 것처럼 성장해나간다. 시행착오를 겪지만 사전 편집실의 보조 조수, 조수 등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간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에즈미의 성장은 현대사의 궤도에 실린다. 소설에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여성 참정권 운동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몸담은 배우와 그녀의 동생과 엮이면서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은 후 입양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는 에즈미는 흘린 단어를 주워 보관하고, 나아가 쪽지와 몽당연필을 들고다니며 사전에는 실리지 못할 단어들, 여성들의 단어를 모은다.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끝까지 보호하는 아빠와, 디트 톰슨 리지 같은 이들이 있었다.
결혼을 생각지도 않던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그러나 또 하나의 현대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 그녀가 모은 단어들을 몰래 《여성들의 단어와 그 의미》란 제목의 책으로 만들어 프러포즈를 했던 개러드 오언은 참전을 하고 결국 전사하고 만다.
소설에는 실제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전설적인 편집자로 오랫당안 활약했던 제임스 머리를 비롯해 그녀의 딸들, 그리고 여러 편집자들이 대표적이다. 또한 소설에서 역사학자로서 에즈미 아빠와 엄마의 오랜 친구로 진짜 고모처럼 에즈미를 아끼는 디트 톰슨(실제 이름은 이디스 톰슨) 역시 실제 인물이다. 핍 윌리엄스는 이러한 인물들 사이에 에즈미와 리지, 개러드와 같은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그들을 역사 속에 실재했던 것처럼 여기도록 바꾸어 놓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 시기 부당하게 취급당했던 여성들의 삶, 권리를 상기시키고 있다.
단어는, 언어는 얼마나 힘이 있을까? 틸다가 행동 없이 말만 하는 운동의 무력함에 대해, 리지가 단어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지적할 때 힘없는 단어, 언어를 자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무기력함, 무용함, 부조리함도 언어로 기록해야만 누군가가 인식할 수 있다. 그렇게나 무기력한 언어가, 단어가 막강한 힘을 얻는 순간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순간을 포착해낼 것이다. 바로 이 소설이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