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이미 읽었어야 했던 소설이다. 내가 첫 책(《세균과 사람》)을 냈을 때 고전문학의 전도사이신 박균호 선생이 서평을 쓰셨는데, 첫머리에 바로 이 소설을 떠올렸다고 했었다(https://omn.kr/232ej). 그때 읽었어야 했는데, 읽으려고 마음 먹었을 때 바로 어떤 행동이든 했어야 했는데 그 타이밍을 놓쳐버렸었다.
그러다 키두니스트의 《고전 리뷰툰, 냉정과 열정(냉정편)》에서 다시 이 소설을 만났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3874978408). 이번에는 행동을 했다. 냉큼 내 책상 앞으로 대령해놓은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어떻게든 읽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읽었다.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다.
내내 서걱거린다.
쏟아지는 모래.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몸에 붙어, 입안에서 까끌거리는 모래. 질식할 것 같다.
“8월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이미 주인공의 결말이 공개해버린다.
“이렇게 하여 아무도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르는 채 7년이 지나, 민법 제30조에 의해 끝내 사망으로 인정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소설을 읽으며 이 남자의 운명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남자가 자신의 운명에 굴복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남자는 교사이지만, 아마추어 곤충(분류)학자이기도 하다. 모래에 사는 새로운 곤충을 찾고, 이름을 붙여 이름도 얻고자 한다(박균호 선생이 내 책을 읽고 이 소설을 떠올린 이유다).
“남자의 목적은 모래땅에 사는 곤충을 채집하는 것이었다. ... (중략) ... 곤충 채집에는 훨씬 더 소박하고 직접적인 기쁨이 있다.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신종 하나만 발견하면, 긴 라틴어 학명과 함께 자기 이름도 곤충도감에 기록되어 거의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 비록 곤충이란 형태를 빌려서이기는 하나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면, 노력한 보람도 있는 셈이다.” (15쪽)
그러나 그것은 탈출을 위한 것이었다. 남자는 쳇바퀴 같은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렇게 모래와 곤충에 이끌려 이런 곳을 찾아온 것도, 결국은 그런 책임의 성가심과 무의미함으로부터 잠시나마 탈출하기 위함이었으니...” (44쪽)
그래서 이 소설은 묘한 아이러니를 가질 수밖에 없다. 탈출을 위해 찾은 모래의 마을에 갇혀 탈출을 기도한다는 얘기니 말이다. ‘뫼비우스의 띠’를 자주 언급하는 것도 이 상황을 상징한다(‘뫼비우스의 띠’는 동료 교사를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다).
남자의 이름도 소설 내내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이름(니키 준페이)은 딱 한 번 언급하는데, 자신이 상상한 수색 신청서에서다. 그의 이름은 도시에서나 필요했던 것이다. 모래 마을의 구멍에 갇히 그에게 이름은 필요가 없어졌다. 누가 그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도시에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단 며칠의 탈출을 기도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버렸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래 구멍으로부터 탈출은 실패한다. “탈출구라 생각하고 몸을 던진 철책의 틈새가 실은 우리의 입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받아들인다. ‘모래의 여자’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여자의 태도는 그제서야 이해된다. 모래 구멍 안의 삶이나 모래 구멍 밖의 삶이나 다를 바 없다. 모래 구멍 안의 삶이 노예의 것이라면 밖에서의 삶도 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살아남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단순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매우 복잡한 이야기일 수 있는 소설이다. 등장인물은 많지 않고, 그들의 관계도 그렇게 다층적이지 않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하나의 관계에 대한 사유는 매우 복잡하다. 하나의 감정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관계다. 우리의 세계가 그렇듯.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맺는 수많은 관계를 몇 가지로 축소시켰음에도 그 관계와 존재가 갖는 의미의 복잡성을 재현하고 있다.
다만 결론이 고립과 굴레를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히 심란하게 한다. 아베 코보가 생각한 인간의 삶이 그런 것이란 얘기인데, 만약 정말 그것만이 우리 삶의 결론이 되어야 한다면 너무나 처참해진다. 삶과 세상을 이렇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서 삶과 세상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되지만, 그리고 그것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환상적으로 그려낸 작가의 솜씨에 경의를 표하지만, 그 사상적 결론에는 그다지 찬성표를 던지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참 문장을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를테면
“기다리는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시간은 뱀의 뱃살처럼, 깊은 주름을 그리며 몇 겹으로 접혀 있었다. 그 하나 하나에 들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더구나 그 주름 하나마다, 모든 형태의 의혹이 제각각의 무기를 숨기고 있다. 그 의혹과 논쟁하고 묵살하고 또는 돌파하여 나아가려면 어지간한 노력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117쪽)
기가 막힌 은유는 펜 끝에서 나오지 않고, 깊은 사유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