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의 시대?

김호연, 《우생학》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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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들에선 이 책을 ‘과학’ 카테고리에 넣고 있지만, 오히려 ‘반(反)과학’에 가깝다. 혹은 ‘반(半)과학’?


우생학(eugenics)는 골튼이 만들어낸 용어이기도 하고, 그가 발전시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각국에서 풍미한(?) 과학의 틀을 둘러싼 이념이다. 국가 혹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적격자와 부적격자를 구분하여 선택과 배제의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그 정점은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였다.


정점이 그랬기에 우생학은 흔히 우파-보수의 것인 양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아주 자주 지적하고 있듯이 우생학은 당대의 좌파-진보도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미국은 ‘우생학이 가장 대중화하고, 우생학적 법률 제정과 실행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던 나라’였고, 복지주의의 모델로도 여겨지는 북유럽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장 불편한 점은 우생학이 과학과 맺고 있는 관련성이다. 골튼이 시작할 때 그랬듯이 우생한은 엄연히 과학의 이름을 내걸었었다. 측정하고, 평가했다. 과학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 대중이 이용했던 것이다. 또한 적지 않은 엘리트 과학자들이 우생학자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과학이 반성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은 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더 불편한 점은 거의 모든 과학, 특히 생의학은 우생학일 수밖에 없는 듯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을 개선하거나 하는 것을 넘어서서 치료하는 것, 백신을 맞는 것 등등이 모두 우생학적 프로그램의 일종일 수도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우생학을 우려하고, 과학이 우생학의 나락에 빠지는 것을 경고하는 측면을 넘어선 부분이 없지 않아 보인다. 어떤 과학 프로그램이든 ‘개인주의’든, ‘뒷문’이든, 형용사를 붙인 우생학이라고 한다면 거의 모든 과학은 태생적으로 우생학의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 것 같다.


그래서 ‘그러면 어떡하란 말인가?’하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만다.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강요는 아니더라도 맞아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 유전병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 등등이 우생학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으니 해당 분야 연구자들을 위험스런 눈길로 쳐다본다면... 과학자들에게 반성적 사고를 촉구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받아들일 만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어려운 문제다. 유전학과 우생학의 경계가 희미한 것만이 아니라 우생학에서 유전학의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는 혐의는 충분히 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유전학을 버릴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유전학, 분자생물학, 유전체학, 생의학이 우생학적인 잘못을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만을 가지고 유전학은, 분자생물학은 우생학이다, 라고 하는 것은 너무 아쉬운 전개이고 결말이다. 내가 이 책을 잘못 읽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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