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클레그, 《신사와 그의 악마》
“맥스웰의 악마(Maxwell’s demon)”라는 게 있다. 흔히 엔트로피의 법칙이라고도 하는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도입한 존재다(이 존재를 악마로 부른 것은 맥스웰의 친구이자, 나중에 캘빈 경이 된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기체는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하는데, 이것은 사실 통계적인 얘기다. 워낙에 반대의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늘 그렇게 일어난다고 얘기하는데, 맥스웰은 한 똑똑하고, 매우 재빠른 존재를 상정해서 분자 하나를 골라내어 이동을 조절함으로써 차가운 쪽은 더욱 차갑게, 뜨거운 쪽은 더욱 뜨겁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물론 그런 일은 거의(정말로 거의, 거의) 일어나지 않는데, 바로 그런 아이러니가 맥스웰의 의도였다.
이 악마의 도입이 “동료들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도전하고, 재미있고 참신한 접근법”으로 “정형화된 과학에 유머를 가미하는 맥스웰의 능력”이었듯이 저자 브라이언 클레그도 바로 그런 목적으로 제임스 클러러크 맥스웰(맥스웰의 악마는 자신의 창조자를 JCM으로 부르고 있다)의 일생과 과학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의 내레이션을 바로 그 악마에게 맡기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의 전자기 방정식이 없다면 현대 물리학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맥스웰에게 큰 빚을 졌다.”고 했다. 브라이언 클레그는 “맥스웰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은 좌초했을 것이고, 수학 모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양자물리학은 절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평가하고 있고, 이런 평가는 다른 데서도 여러 차례 접할 수 있다.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넘사벽을 제외하고는, 말하자면 인간계에서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를 꼽으라면 맥스웰을 꼽을 이들이 적지 않을 터인데, 이상한 건 그의 인지도가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 시기의, 혹은 그 이후의 다른 물리학자들보다도 훨씬 인지도가 떨어진다. 놀라운 일이다! 왜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
맥스웰은 전자기학을 집대성한 과학자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전자기학에서의 업적은 4개의 방정식으로 요약된 이른바 ‘맥스웰 방정식’으로 표현된다(이렇게 4개의 방정식으로 줄인 것은 맥스웰이 한 일은 아니지만). 그런데 그는 전자기학 연구 이전에 색각에 대한 연구, 토성 꼬리에 대한 연구, 열역학에 대한 연구 등 다양한 방면에 호기심을 가졌던 과학자다.
또한 그가 48살의 나이에 복부 암으로 세상을 떠날 당시만 해도 기체 연구에 업적을 남긴 과학자로 더 유명했다. 사이버네틱스 개념을 창안한 노버트 위너는 맥스웰을 두고 자동 제어의 창시자이자 제어 시스템 이론의 시동을 건 인물로 여겼다고 한다. 심지어 유전학에 관해서까지 논의했다. 물론 현대의 유전학에 비추면 잘못된 생각이었지만, 그 시기의 지식에 비추면 상당히 논리적이었다. 이처럼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특출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당시부터 ‘노동자들의 대학’의 설립자이기도 하면서 교수가 된 이후에도 노동자들을 위한 강의에 열정을 보였다(이건 정말 몰랐던 맥스웰의 면모다).
맥스웰은 스스로 “수학적 도구들을 좋아하고 모든 종류의 정다각형과 곡선 형태에 열광”한다고 했다. 손재주가 좋았으며, 음악을 사랑했던 과학자. 자신을 평하기를 “꾸준함과 지속은 우수”하고, “감사하는 마음과 분노는 약”하다고 했던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의 다른 과학자들과는 달리, 또 내가 가졌던 인상과도 달리 상당히 사교적이고 유머가 있었던 과학자였다.
그는 수학과 물리학을 (실질적으로) 결합한 첫 물리학자였다.
“그전까지 물리학은 대체로 설명 중심의 학문이었지만, 맥스웰 이후로 수학이 물리학의 발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또한 실험물리학자였다. 윌리엄 톰슨이 실험물리학을 개척한 과학자라고 할 수 있지만, 맥스웰도 못지않았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첫 실험물리학 교수였으며,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캐번디시 연구소의 첫 소장이었다(지금 11대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론물리학자였다. 브라이언 클레그는 이렇게 쓰고 있기도 하다.
“어찌 보면 현대의 이론물리학자라는 것 자체가 맥스웰의 발명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이론학자들이 하는 일은 주로 관찰 내용에 맞게 이론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맥스웰은 이론물리학자란 실험적 증거에 남은 구멍을 찾고 시험해 볼 수 있는 예측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맥스웰은 진정한 의미의 첫 현대적 물리학자였다. 저자와 토론했던 어떤 과학자가 주장했듯이, 맥스웰은 “물리적 실제의 ‘진정한 본질’을 수립하는 노력에서 물리적 실제를 수학적으로 모형화하려는 단계로 이행한” 첫 과학자였다.
맥스웰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알려져도 괜찮은, 아니 그래야 할 과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