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럽 에버렛, 《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
”호모 사피엔스의 폭넓은 언어·인지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인류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필수적“
이 책을 쓴 케일럽 에버렛은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다. 특이한 것은 그의 아버지 대니얼 에버렛도 저명한 인류학자, 언어학자라는 것이다(이 책에도 소개되고 있지만 대니얼 에버렛은 촘스키의 재귀이론에 처음으로 맞장을 뜨기도 했다). 케일럽 에버렛은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아마존 밀림에서 지내면서 그곳의 언어와 문화를 접하면서 자랐다고 한다. 그랬다고 다 인류학자, 언어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경험이 케일럽 에버렛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케일럽 에버렛은 언어의 보편성에 의구심을 드러낸다. 물론 인류에게 언어 자체는 보편적이다. 그러나 언어의 구성 자체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간과해오던 것이라는데, 그렇게 된 이유를 그는 그동안 대부분의 연구가 이른바 WEIRD를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WEIRD (위어드)는 조지프 헨릭 등이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and democratic)의 약자다. 거의 모든 심리학 등의 연구가 이들 국가에서, 게다가 실험하기 좋은 대상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어학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케일럽 에버렛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도 그의 성장 배경을 설명했는데, 그는 이런 점을 지적하기에 매우 적절한 경험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언어학의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 책의 요지만큼은 그리 어렵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은 전 세계에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는데(물론 그게 조만간 600개 정도로 줄어들 거란 예상이 있긴 하다), 그것들이 동일한 체계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시공간을 나타내는 개념도 다르다. 영어는 주로 자기중심적인 언어로, 사물의 위치를 자신과 비교해서 나타내는 반면, 지구중심적으로 나타내는 언어도 있고, 주변의 사물을 중심으로 인식하는 언어도 있다. 친척들을 지칭하는 방식도 다르다. 어떤 언어는 친척을 뭉뚱그려 몇 가지 단어로 지칭하는 데 반해, 매우 세세하게 구분하는 언어도 있다. 색을 나타내는 단어의 종류도 언어마다 매우 다르다(여기서는 절대적인 색인, 기본색의 개념을 쓰는데, 대부분의 언어가 2~10개 정도의 기본색을 나타내는 언어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어는 15개나 있어 이례적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언어의 다양성에 대한 깨달음은 인류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언어는 다양한 특성을 가질까? 이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환경이 다르니까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그런 경우가 없지 않지만, 저자는 이를 단정 짓지 않는다.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처해 있는 환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역시 너무나도 언어가 다양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얘기할 수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
이밖에 케일럽 에버렛은 언어가 어느 정도의 비자의성을 띤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즉,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그것을 연상케 한다는 것으로, 이를테면 ‘bl-’이란 소리로 시작하는 말이 둥글다는 느낌을 준다는 얘기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예를 들고 있는데, ‘sn-’은 입이나 코에 관한 낱말에, ‘wh-’는 어떤 소리를 나타내는 낱말에, ‘tr-’은 큰 소리를 내거나 의도적으로 걷는 것과 같은 낱말에, ‘sw-’는 아치꼴로 움직이는 행위를, ‘spr-’는 중심에서 먼 쪽으로 움직이는 행위를 가리키는 낱말에 쓰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세를 두거나, 크게, 혹은 작게 말하거나, 긴 모음으로 말하거나 하는 것이 모두 그 단어의 뜻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에 관해서는 ‘부바-키키(bouba-kiki)’ 효과라는 잘 알려진 예도 있다. 물론 저자는 이게 모든 단어의 뜻이 그것의 발음이 연상케 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식으로 과도한 일반화를 시도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경향이 모든 언어에서 보인다는 얘기다(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이 책의 다른 부분과는 좀 이질적인 느낌을 받긴 했다. 다양성보다는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느낌이라).
언어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저 지레짐작으로 느끼고만 있던 것인데, 케일럽 에버렛의 이 책은 그것을 다양한 언어(그게 주로 영어를 비롯한 유럽어와 남아메리카의 언어를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게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를 통해, 증거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