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공이 쓴 시계의 역사

레베카 스트러더스, 《시계의 시간》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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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적인 진화학자이자 저술가 리처드 도킨스의 초기 저작 중에 《눈먼 시계공(Blind watchmaker)》란 책이 있다. 19세기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가 길을 가다 시계를 발견했다면, 그처럼 정교한 장치가 저절로 만들어졌을 리 없기 때문에 누군가, 즉 시계공가 만들었다고 생각해야 한다면서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 데 대해 리처드 도킨스는 반박하며 시계공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눈먼’ 시계공, 즉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시계는 19세기, 아니 그 이전부터 정교함과 복잡함의 대명사로 받아들여져 왔다.


시간이 존재하면 당연히 그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했던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리고 그 측정의 방법은 발달을 거듭해 시계라는 장치를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시계라는 장치는 역사적인 것이다.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이를테면 하루를 몇 시간으로 볼 것이냐, 혹은 시간을 얼마나 너그럽게 볼 것이냐 등등) 시계는 그 형태를 달리해왔고, 시계 자체를 기능적으로 볼 것인지, 장식품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도 모습도, 기능도, 꾸밈새도 달라져 왔다. 대표적인 것이 1차 세계대전을 즈음으로 해서 그 이전에는 여성들이 팔목에 시계를 차고, 남성들은 회중시계를 들고 다녔다면, 긴박한 상황에서 바로 시계를 확인할 필요 때문에 남성들이 팔목에 시계를 차기 시작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시계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어떤 과정을 발달해왔는지 기능적으로, 미학적으로 이해하고, 또 그런 시계를 사회와 개인은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를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시계 제작과 시계의 역사를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어떻게 보면 시계와 관련한 일을 하는 이면 가능한 상황 같지만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게 가능한 것은 바로 이 책의 저자, 레베카 스트러더스가 시계 제작자, 즉 시계공이면서 시계학(시계의 역사)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기계로서의 시계와 역사로서의 시계는 매우 절묘하게 만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이렇게 써놓고도 뭔가 이율배반적이란 생각이 든다. 명색이 이과 출신인 내가?) 나는 시계의 역사에 관심이 쏠린다. 기계로서의 시계와 관련해서는 낯선 용어들 때문에 상당 부분 그러려니 하면 넘어갔고, 심지어 마지막 장 “시계 고치는 법”은 거의 넘겨버렸다. 그렇게 반쪽만 읽은 셈인데도 나는 다른 책이라면 두 권을 읽은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저자가 시계의 역사만 심드렁하게 나열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시계의 역사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역사가 죽은 역사가 아니라 바로 현재로 이어지는 살아있는 역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도였다 시계를 제작을 배우는 거의 유일한 여성으로서, 시계를 고치고, 시계를 제작하고, 시계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로서 역시 시계 제작자인 남편과 함께 지금까지 이어온 삶 자체가 어쩌면 역사란 생각도 들게 한다.


특히 관심이 가는 역사들이 있다.

우선 존 해리슨의 ‘경도상(The Longitude Prize)’과 관련된 이야기는 데이바 소벨의 《경도 이야기》란 책으로도 잘 알고 있고, 또 항생제 내성과도 관련이 있어서 강의 때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직접 시계공의 목소리로 듣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저자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였던 ‘윌터의 시계’도 흥미로운 내용이다. 존 윌터라는 가상의 시계 제작자의 이름을 빌어 네덜란드풍으로 만들어진, 말하자면 짝퉁 시계인 셈인데, 당시의 시대상과 시계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마리 앙투와네트와 관련된 시계 이야기도 재미있다. 이른바 ‘여왕의 시계’는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는 다른, 당시 프랑스 왕실의 고급스런(?) 취미가 시계에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브레게라는 천재 시계 제작자가 의뢰를 받고 수십 년에 걸쳐(앙투와네트가 죽은 이후에도) 제작하고, 결국은 아들 대에 걸쳐 완성했다는 시계 이야기는 시계 장인의 집념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남극 탐험에서 죽은 스콧의 시계, 에베레스트 등반 중 죽은 콘래드 앵커의 시계,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이 터진 시각에 멈춘 시계 등등은 그 주인의 비극성과 함께 시계가 무엇을 증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스위스의 수출회사에서 통역 및 사무직으로 일하던 독일 출신의 한 젊은이가 영국으로 이주해 후원자와 함께 시계회사를 차리고 천재적인 마케팅 실력으로 시계의 역사를 다시 바꾼 역사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빌스도르프 앤 데이비스(Wilsdorf & Davis)’라는 이 회사는 1914년 새로운 회사명을 등록했고, 1915년부터 새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왜 이 사무원 출신의 시계회사 사장을 기억해야 하냐면, 새로 바뀐 회사명이 바로 롤렉스(Rolex)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생기면서 시간이 생겼고, 인류가 태동하면서 시간에 얽매였다. 산업혁명 이후로는 시계에 예속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시간과 관계없이 살 수 없고, 그래서 시계를 제쳐두고 이 사회에 존재할 수 없다. 그 시계의 역사, 시간의 역사가 무섭고, 흥미롭고, 또 고맙기도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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