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제, 《들뜨는 밤엔 화학을 마신다》
술에 관한 책을 읽으면 절로 취하는 느낌이 들다가 갑자기 깨버린다. 상상 속으로, 때로는 실제로 맥주라도, 사케라도 한 잔 하면서 읽으며 즐기지만, 속성상 마냥 찬양만 하지 않기에 현타가 오는 것이다. 장홍제 교수의 책도 그랬다. 즐겁다가 의심스럽다가 안도하다 무섭다가... 그러다 결국엔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나으니 나는 어제보다 조금 낫게 술을 마실 수 있겠다,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술에 관해서 과학자가 책을 쓴다면 그래도 화학자가 제일 낫지 않을까 생각해 왔다. 물리학자가 술에 대해 쓴다는 것은 너무 낭만도 없어 보이고, 술의 물리학에 대해 쓴다고 해도 그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 생물학자는 어떨까? 아마 술이 가져오는 신경학적 변화에 대해, 혹은 그것이 장에서 받아들여지는 메커니즘에 대해 잔뜩 쓸 수는 있을 거다. 그러나 술의 물성에 대해서는 조금 약하지 않을까? 지질학자, 해양학자, 천문학자는 패스! 반면 화학자는 물리학자와 생물학자 사이에 서서 적절히 조절해가며 이쪽 저쪽을 다 언급해가며 술에 관해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해왔다.
그리고 장홍제 교수가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고백하기로는 술이 별로 세지는 않다고 하지만, 필시 즐길 것은 분명한(실제 만난 일 없는 사이에 이런 말을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생김새도 그렇다) 양반이 에탄올의 화학구조를 언급하면서 그것이 몸에서 받아들여지는 과정, 그리고 숙취를 일으키고 해장되는 상황을 ‘화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곁들여서 인체의 신경학적인 면까지도 언급한다. 술에 관해서 백과사전식의 다양하고도 정말 시시콜콜한 것까지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술자리에 앉아서, “술이란 말이지...”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좋은 얘깃거리들이다(문제는 술을 마셨을 때 잘 떠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술의 종류라든가, 어떤 술이 어떤 유래를 가지고 있다든가 하는 것보다 술의 과학이라 더 좋다(장홍제 교수돈 잠깐 언급하고 있듯이 ‘과학적으로’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우쭐해지고, 뭔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술은 그 끝을 알면서도 마시게 된다. 아침에 이불킥하면서, 후회 가득한 한숨을 쉴 때가 많지만, (그날은 건너뛸지라도) 다시 술을 찾게 되고, 다시 반복된다. 그런데 그런 술을 오래토록 즐기기 위해서는 잘 마셔야 한다. 이 책에는 그런 팁도 있다. 과학적인 이유와 함께 제시되고는 있지만, 대체로는 개인적인 팁이고, 사회적으로도 자주 언급되는 내용들이다. 그러니 술을 잘 마시는 것은 어떤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뿐이다. 나 같은 사람이라면 과학적으로 그렇다면 훨씬 신뢰가 가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술에 관한 문화, 예의 같은 것은 잘 지켰으면 좋겠다.
그런데, 한 가지. 제목에 ‘화학을 마신다’고 했는데, 술 얘기를 가장 잘 할 것 같은 과학자가 화학자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화학을 마신다’고 하면 뭔가 낭만이 줄어드는 느낌 아닌가? 술을 바라볼 때는 과학적으로다가, 마실 때는 예술적으로다가... 이게 더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