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 《허삼관 매혈기》
중국 한 사내의 삶 이야기면서, 중국 현대사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부성(父性)에 관한 보편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의 삶도 그렇듯 그의 삶은 그가 살아간 공간, 시대와 굳게 붙잡혀 있다. 국가, 가족, 가난. 그런 것들이 그를 옥죄었지만, 그는 국가를 원망하지 않았고, 가족을 버리지 않았고, 가난을 저주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피를 팔았다. 피를 팔아 아내를 얻었고, 첫째 아들이 벌인 사고를 수습했고, 잠깐의 외도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고, 수십 일 동안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던 가족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먹도록 해주었고, 쓰러진 아들을 살리고, 또 아들의 편안함을 위해 상사를 대접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거 우리에게도 피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이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한다. 어린 시절에는 헌혈을 하면 무엇무엇을 준다더라는 전언에 솔깃했던 적도 있다. 그걸 매혈(賣血)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피란 뽑고 나서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기는 것이기에 아무 것도 손해보지 않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허삼관이란 사내에게도 피는 그런 것이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내가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파렴치한 짓을 하기 위해서라도 유일하게 팔 수 있던 수단, 피!
허삼관의 삶은 분명 고단했다. 그런데 이런 삶을 비극적으로만, 비장하게만 그렸다면 이 작품은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허삼관과 그의 가족의 비루한 처지는 비극적일 테지만, 그 비루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 특히 허삼관은 희극적이다. 물을 마시면 피가 많이 생긴다는 잘못된 상식을 죽을 때까지 지니고 있는 것이나, 첫째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아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쩌면 비웃음을 사리만치 어리석고, 비굴하며, 우습다. 하지만 그 어리석고, 비굴하고 우스운 모습이야말로 허삼관 같은 이들이 그 시대를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으며, 또 자신과 가족이 버틸 수 있는 힘도 그런 데서 나왔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게 비극적인 삶을 희극적으로 그려낸 것은 작가 위화의 솜씨다.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여러 있다.
첫째의 친아버지의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첫째를 설득해서 굴뚝 위로 올라가 소리를 지르도록 하는 장면, 문화대혁명 와중에 아내가 오래전 일로 비판당하며 고치를 겪을 때 가족 비판 대회를 열 수 없었던 장면(문화대혁명을 이렇게 돌려깐다!), 그리고 첫째가 쓰러졌을 때 아들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사나흘에 한 번씩 피를 뽑아대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다시 피를 뽑는 장면, 등등
우리는 이 소설을 중국을 이해하거나, 중국을 비판하거나, 혹은 중국을 비아냥거리기 위해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허삼관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도 있다. 시대가 달라지고, 장소가 달라져도 인간 삶의 본질을 크게 달라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이 소설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교훈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공감이 이 소설을 읽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좋은 소설이란 그런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