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 《오역하는 말들》
그냥 제목을 보고, 내용이 어떨 것 같다는 예상만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저자(황석희)가 꽤 유명한 번역가다. 몇 년 전 화제가 되기도 했던 기억이 났고, 또 <전지적 작가 시점>에도 출연했던 모양이다(이건 보지 못했다). 주로 영화나 뮤지컬 등의 번역을 한다. 워낙 종이책 애호가인지라, 번역가라고 하면 책 번역만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다른 쪽이 훨씬 많을 거라는 걸 알겠다.
번역과 관련한 일, 가족과 관련한 일, 사회와 관련한 일 등등에 대해 쓰고 있다. 그것을 ‘오역’이라는 주제어를 두고 변주하며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말 그대로 풀어하면 오역이란 잘못된 번역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떤 게 오역인지는 불분명하다. 저자가 예로 들고 있듯이,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 오르페우스의 첫 대사 “Come home with me.”를 “집에 가요.”가 아니라 “결혼해요.”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이에 관해 저자는 구구절절히 그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그건 번역 자체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다. 세상을 오역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때로는 그런 오역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큰 사건도 가져오지만, 때로는 필요하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경우다. 그러나 어찌할 바 없는 집단 오역이라는 더럽고, 참담한 오역도 있다. 다른 사람을 무조건 오해하고, 공격하기 위한 오역은 집단 린치로 이어진다. 다시 말하지만 참담하다.
직역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사람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문제는 어떤 경우에 직역을 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 오역을 감수해야 하는지 알기 힘들다는 데 있다. 그건 삶의 경험이 쌓여야 조금씩 눈에 들어올 터인데, 정작 삶의 경험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나의 경험이기도 하고, 저자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러니 보다 겸손하게 살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저자가 책머리에 쓰고 있듯이 우리는 “오늘도 일상에서 참 무수한 말들을 번역”하며 살아간다. 그것 때문에 아프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또 기뻐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체로는 나의 번역이 옳았던 것인지, 그릇됐던 것인지 모르고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그런 게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르고 지나가는 것들, 그것들이 어느 순간이 와서야 다시 눈에 들어오고 생각이 난다. 그때 반성하고 되짚어보면 된다.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