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츠신, 《삼체 1. 삼체문제》
‘삼체’ 문제는 고전 물리학의 중요한 문제이면서 난제였다. 뉴턴도 두 물체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만 원리를 밝히고, 방정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세 물체 사이의 관계는 당대에는 풀 수 없다고 여겨 포기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많은 수학자, 물리학자가 도전했지만, 오일러, 라그랑주 같은 이들도 특수해만 찾아냈을 뿐이다. 그리고 19세기말, 20세기초 푸앵카레가 삼체문제를 수학적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에 ‘삼체’라고 한 것 자체가 무척이나 도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든 풀어낼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접근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궁금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삼체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어떨지가 가장 관심이 갔다.
소설에서 류츠신은 삼체를 외계 문명과 관련시켰다. 외계에 태양이 세 개 뜨는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문화혁명 때 아버지를 잃은 한 여성 물리학자가 그들과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그 여성 물리학자의 의도를 넘어서서 외계의 삼체 문명은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서 함대를 출동시키고(450년 후에야 도착하게 되어 있다), 그 전에 지구에서의 과학을 정체시키기 위한 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에 답하는 조직이 생기고 반란을 꾀한다.
이 소설에는 중국의 현대사가 뼈대를 이룬다. 그리고 삼체 반란 조직이 만들어낸 게임에서는 인류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이 소설은, 소설 속의 삼체 반란 조직이 그들의 조직원으로 엘리트들만을 포섭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을 위한 소설이 된다. 물론 소설 속에서 설명하는 과학적, 특히 물리학적 설명은 상당한 수준인 데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수준의, 상상의 것도 포함되어 있어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황당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소설의 첫머리와 맨 마지막이 가장 인상 깊다.
우선 첫 장의 제목은 “물리학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의 내용이 물리학의 내용이라는 얘기이며, 현재의 물리학을 넘어서는 물리학에 관한 것이라는 암시를 받는다. 그리고 읽다 보면, 그 물리학이 대표하는 인류의 과학을 정체시키기 위한 음모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외계 문명에서 지구로 보낸 마지막 메시지는 “너희는 벌레다!”이다. 말하자면 자기네보다 문명 수준이 낮은 지구에 대한 비하다. 그러나 인상도 좋지 못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20년 경력의 형사 스창은 나노물리학자 왕먀오와 딩이에게 메뚜기떼가 창궐한 자신의 고향 보리밭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이런 얘기를 한다.
“지구인과 삼체인의 기술 수준 차이가 클까, 아니면 메뚜기와 우리의 기술 차이가 클까? 나는 자네들이 이 문제를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군.”
인간은 지금까지 메뚜기와 같은 벌레들을 박멸하려고 해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패했다. 지구인과 삼체인 사이의 문명 차이가 그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삼체문명의 보잘 것 없는 감청인 1379호가 지구를 살리기로 마음먹은 이유를 얘기하는 데서도 그런 관점이 드러난다. 지구의 문명은 “영원히 봄 같은 아름다운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사회”와 같고, 그 문명은 허약하다는 삼체문명의 원수의 말에 1379호는 이렇게 답한다.
“그 꽃은 연약하지만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 꽃은 천국의 한적함 속에서 자유롭고 아름답습니다.”
《삼체 1. 삼체문제》는 지구 문명의 비도덕성, 파괴성을 비판하는 듯하다가, 이렇게 그럼에도 우리가 무엇 때문에 지구의 문명을 긍정해야 하는지를 설득하고 있다.
나는 《삼체》 1부가 전체 3부의 부분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 1부 자체가 완결적이다. 그러니까 이 책 《삼체 1. 삼체문제》는 류츠신이 계획한 ‘지구의 과거’ 연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2부 암흑의 숲’, ‘3부 사신의 영생’은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