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 피터스, 《캐드펠 수사의 참회》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서 장편으로서 마지막 작품.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역사추리소설이란 장르에 속하는 게 분명하지만, 이 마지막 작품은 추리적 요소보다는(없지는 않다) 메시지에 보다 많이 치중하고 있다. 그 메시지는 아버지(또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다루고 있고, 더불어 권력자들 사이의 다툼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는 12세기다.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가 내란을 벌이던 시기다. 사실 이 내란은 영국의 역사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나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역사가 엘리스 피터스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으로 삼으면서 느닷없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헨리 1세 이후 사촌 사이의 왕위 다툼으로 인한 지리한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괴로움을 겪자 이를 중재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래서 양측이 코번트리에 모인다. 그 모임에 캐드펠 수사도 참석하고자 수도원장에게 허락을 구하는데, 그 이유는 내전 중에 포로로 잡히 한 기사를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포로로 잡힌 기사는 돈을 받고 풀어주곤 했는데, 그 기사만큼은 누구에게 잡혀 있는지, 얼마나 원하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 기사의 이름은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 캐드펠 수사가 젊었을 적 십자군 전쟁 중에 한 여인을 만나 낳은 아이였다. 캐드펠 수사는 아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나중에 수도원에서 만난 후에야 그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코번트리의 회의에 참가하고자 했고, 캐드펠 수사의 참회를 듣고 수도원장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돌아올 것을 전제로 허락한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허락도 축복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중재 회의는 (예상했던 대로) 서로의 주장만 내세우다 실패로 끝이 난다. 더군다나 회의 도중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캐드펠 수사가 아끼는 청년이 사건에 휘말려 납치까지 당하고 만다. 캐드펠 수사는 아들만이 아니라 이 청년까지 구해야 하는 이중의 의무를 지게 된다. 그리고, 논리와 지혜와 과감한 행동으로 청년을 구하고, 아들을 구하고...
소설은 아버지로서의 캐드펠 수사의 활약을 보여주지만, 그것 말고도 여러 부자, 모자의 관계, 그리고 우정의 관계를 보여준다. 필립 피츠로버트와 그의 아버지 로버트와의 관계, 황후의 시녀 조베타 드 몽토르와 그녀의 아들 제프리 피츠클레어의 관계, 그리고 필립과 올리비에, 올리비에와 이브의 우정. 이 관계들은 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다전쟁의 시기에도 끝까지 버릴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필립 피츠로버트다. 그의 배신은 자신이 모시던 황후에 대한 배신이면서 아버지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인간적이고 처절한 고민의 결과였다. 또한 올리비에를 가두어놓고는 절대로 내놓을 수 없다고 한 행위 역시 공적인 상황과 우정이라는 개인적 상황에 대한 고뇌의 결과였다. 그리고 지휘관으로서 책임감 역시 인상적이다. 아마 엘리스 피터스도 충분히 그런 걸 염두에 두고, 필립을 인상적인 인물로 그렸을 것이다. 필립이 캐드펠 수사와 올리비에의 도움으로 살아나 아버지와 화해한 후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 십자군 전쟁에 자원한 것은, 어쩌면 캐드펠 수사의 길을 그도 걷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